[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美 역사학 교수 마리 루이즈의 ‘미군과 여성’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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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佛 노르망디 상륙 D데이
미군 독려 구호는 ‘에로틱 어드벤처’

사진 출처 위스콘신대 홈페이지
사진 출처 위스콘신대 홈페이지
“독일인들이 도착했을 때, 남자들이 숨었다. 그러나 미군이 도착했을 때는 여자들이 숨었다.”(노르망디상륙작전 당시 유행어)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이자, 1944년 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상륙작전이 펼쳐진 지 70주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전쟁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여성들에 대한 폭넓은 조명도 이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르망디상륙작전 당시 해방군으로 왔던 미군과 프랑스 여성의 관계를 다룬 책이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역사학 교수인 마리 루이즈(사진)가 쓴 ‘미군과 여성(Des GI’s et des Femmes)’이다. 프랑스 여성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1944∼46년 잡지와 편지, 일기장, 경찰 조서, 재판기록 등 자료를 꼼꼼히 분석해 책을 썼다.

당시 미국은 프랑스에 대해 와인이 넘쳐나고, 매력적인 여인들이 사는 쾌락의 천국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라이프 잡지에는 이런 글도 실렸다. “프랑스는 4000만 명의 쾌락주의자가 사는 거대한 매음굴이다.”

이런 판타지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상륙작전에서 절정에 달했다. 미군이 디데이를 앞두고 병사들 사기를 독려한 구호는 ‘자유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에로틱 어드벤처’였다. 포토저널리즘은 그 선봉에 섰다. 미군이 프랑스 여성으로부터 열렬한 키스 세례를 받는 사진이 전 세계로 퍼졌다. 이런 이미지는 미군이 나치 손아귀에서 시달리는 프랑스 여성을 구하는 상륙작전을 펼친다는 신화를 상징화했다. 반면 프랑스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 ‘거세된 남성’의 나라로 비쳤다. 실제로 프랑스 남성은 200만 명이 독일의 포로수용소에 끌려가거나 레지스탕스와 함께 지하로 숨었다.

이와 관련해 1944년 미군 신문 성조지에 실린 외국어학습 예문이 흥미롭다. 독일어 예문은 “담배 한 대 피울래?” “일어나!” 같은 말이었지만, 프랑스어 예문은 “마담,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요.” “집에는 오늘 부모님이 계시나요?”였다.

이 책에는 ‘2차 대전 해방공간에서의 사랑, 매춘, 강간’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로맨틱한 사랑, 돈에 의한 매춘을 넘어 1944년 노르망디의 여름에는 대규모 강간사건이 벌어졌다. 미군 당국과 프랑스 사회는 미군의 영웅신화를 무너뜨리지 않아도 될 희생양을 찾았다. 바로 미군 흑인 병사였다. 1944년에 152명의 병사가 강간사건으로 법적인 처벌을 받았는데 그중 130명이 흑인이었다.

저자는 “이 재판은 흑인을 성적 충동을 주체 못하는 동물이라고 치부함으로써 미군의 영웅화 내러티브와 분리시켰다”고 말했다.

저자는 “역사상 전쟁에서 여성의 몸은 또 다른 치열한 전쟁터였다”고 말한다. 점령군이든, 해방군이든, 동맹군이든 외국 군인의 성적 행동이 전후 정치적 외교적 관계에서 상징적 역할을 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전쟁 중 성적 행동이 전쟁사 연구의 주석이 아니라 ‘중심 주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주장처럼 위안부 문제가 이미 해결된 사안이라고 넘어가선 안 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미군과 여성#마리 루이즈#노르망디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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