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복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작품 내기만 하면 돈방석” 先인세 수직상승
15억원說 ‘색채…’는 43만부 팔려 밑진 장사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교보문고에 꽂혀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 하루키 신작 입찰을 준비 중인 출판계는 “하루키 소설 선인세를 한국처럼 많이 주는 나라는 없다”며 “출판사 간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판권 경쟁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교보문고에 꽂혀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 하루키 신작 입찰을 준비 중인 출판계는 “하루키 소설 선인세를 한국처럼 많이 주는 나라는 없다”며 “출판사 간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판권 경쟁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하루키의 신간이 그간 국내 출판사들 사이에서 ‘복권’으로 통했던 까닭은 높은 선인세를 내더라도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판매량을 기록해왔기 때문이다.

출판계에 따르면 하루키 작품의 선인세는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작품당 300만∼500만 원에 그쳤다. 하루키 책을 펴냈던 한 출판사 관계자는 “1990년대 말까지도 선인세는 1000만 원을 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면서 2억∼3억 원대로 껑충 뛰었다”고 말했다. 2008년 ‘해변의 카프카’ 출간 때는 선인세가 약 5억 원까지 치솟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8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출판계에는 “하루키 작품은 내기만 하면 돈방석에 앉는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표 참조). 권당 1만 원 기준으로 계산하면 10만 부만 팔려도 10억 원의 매출을 올리게 되기 때문.

하루키 판권 경쟁이 불붙으며 가격이 폭등한 건 2009년 ‘1Q84’ 출간 때부터다. 그전까지 하루키 작품은 일본 사카이 에이전시로부터 국내 에이전시 ‘북포스트’를 거쳐 문학사상사에서 주로 출간됐다. 오랜 거래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 출판계 관행이 이어진 것. 그러나 ‘1Q84’부터 사카이 에이전시는 국내 출판사 간 경쟁을 유도했고 이후 신간이 나올 때마다 판권 경쟁이 과열됐다.

지난해 7월에 국내에 출간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경우 선인세가 15억 원 이상이라는 소문이 출판계에 파다했다. ‘색채…’를 펴낸 민음사는 “계약상 액수를 공개할 수 없다”고만 밝혔다.

출판계에선 “‘색채…’는 사실상 실패”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사 편집자는 “소문처럼 15억 원이 넘는 선인세를 주고, 여기에 제작비와 광고비, 그리고 구매자에게 영화예매권을 주는 대규모 마케팅 비용까지 썼는데 겨우 43만 부만 팔렸으면 밑지는 장사”라며 “‘여자가 없는 남자들’에는 ‘세게 지르지 말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색채…’의 학습효과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무라카미 하루키#여자가 없는 남자들#1Q84#해변의 카프카#상실의 시대#선인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