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내린 눈썹… 詩心만은 아직 푸릇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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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넘긴 한국 첫 女시인 동인회 ‘청미’ 기념총집 발간

우리 문단 최초의 여시인 동인회인 ‘청미’의 동인들. 지난해 가을 청미 결성 50주년을 기념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찍은 사진이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경희 허영자 추영수 김선영 김후란 김혜숙 임성숙 시인. 청미동인회 제공
우리 문단 최초의 여시인 동인회인 ‘청미’의 동인들. 지난해 가을 청미 결성 50주년을 기념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찍은 사진이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경희 허영자 추영수 김선영 김후란 김혜숙 임성숙 시인. 청미동인회 제공
동장군의 맹위 탓에 “춥다, 추워” 하는 말이 절로 나왔던 1963년 1월 20일. 서울 명동의 한 백화점 지하다방에 등단 3, 4년을 갓 넘긴 여시인들이 모였다. 지금은 모두 칠순을 넘긴 김숙자(77) 김후란(80) 박영숙(82), 허영자 시인(76)이었다. 뒤늦게 모임 소식을 전해 들은 추영수(77) 김혜숙(77) 김선영 시인(76)이 동참했다. 당시 20, 30대 여시인 7명으로 구성된 한국 문단 최초의 여시인 동인회 ‘청미(靑眉)’는 그렇게 탄생했다.

“막내였던 제가 25세였고, 최연장자였던 박영숙 시인도 서른을 갓 넘겼을 때니까 당시엔 다들 푸른 눈썹(청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신예였지요. 시를 통해서만 이름을 알던 분도 계셔서 첫 모임에 수줍게 나갔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통해서 단번에 친구가 됐지요.” 청미 창립 멤버인 허영자 시인의 회고다.

청미의 탄생 배경에는 이제 막 등단한 젊은 여시인들이 세상과 소통하고픈 갈망이 자리했다. 김후란 시인은 “당시는 현대문학, 자유문학 정도밖에 시를 발표할 곳이 없었어요. 동인지들이 막 늘어나는 시점이었는데 신문기자였던 박영숙 시인(대한매일)과 제(서울신문)가 ‘이참에 여시인만의 동인회를 만들어 보자’는 데 뜻을 모았죠”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동인 활동 초창기인 1970년 12월 동인시집 발송 작업을 위해 모인 청미동인들. 왼쪽부터 허영자 김후란 김선영 김여정 임성숙 이경희 추영수 시인. 청미동인회 제공
동인 활동 초창기인 1970년 12월 동인시집 발송 작업을 위해 모인 청미동인들. 왼쪽부터 허영자 김후란 김선영 김여정 임성숙 이경희 추영수 시인. 청미동인회 제공
동인회 이름은 청미였지만 동인지 제호는 고문을 맡은 김남조 시인의 제안으로 ‘돌과 사랑’으로 정했다. 동인의 신작시와 ‘영국 여류시단의 근황’ 같은 논고를 묶어 50쪽 두께로 펴낸 창간호 500부는 서점에서 금세 동이 났다. 동인지의 표지를 정하는데도 예닐곱 번씩 모임을 갖고, 동인들이 직접 나서 시내 서점에 배부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결과였다.

청미 동인회의 활동은 “서정시에 주지주의를 가미한 신(新)서정시의 세계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단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60, 70년대 청미 동인회가 시화전이나 시낭송회를 연다고 하면 박수근 김기창 같은 당대의 화가들이 선뜻 그림을 내놨고, 박목월 조병화 김광림 같은 대시인이 자리를 빛내려 달려왔다.

1968년 임성숙(81), 김여정(81), 이경희 시인(79)이 새로 합류했다가 이후 해외 이민 등의 사정으로 박영숙, 김숙자, 김여정 시인이 동인 활동을 접으면서 동인지 이름도 ‘청미’로 바꿨다. 연간지 형태로 동인회 결성 35주년인 1988년까지 발간했다. 지난해로 결성 50주년을 맞은 청미 동인회는 최근 동인들의 자작시와 친필시, 청미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과 논평문을 모아 기념총집(사진)을 냈다. 반세기 동안 지속된 동인회 활동을 결산하는 의미를 담았다. 김후란 시인은 “숱하게 명멸하는 다른 동인회와 달리 청미가 반세기 동안 지속된 것은 마치 널뛰기를 할 때 마주 보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동인회 활동이 동인 각자의 작품 활동에 자극과 분발의 상승 작용을 일으킨 덕분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팔순을 넘긴 동인이 나오면서 푸르렀던 청미 동인의 눈썹에는 어느덧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서로의 작품 활동을 격려하고 비평하는 시심은 51년 전 처음 만났던 그 추운 겨울날처럼 여전히 푸르다 했다. “우리는 깊은 사랑으로 맺어진 자매와 같은 관계로 살아왔어요. 남은 시간도 서로가 더 좋은 시를 쓰도록 격려하며 사랑을 나누는 관계로 남고자 합니다.”(추영수 시인)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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