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별별 예쁜 책]일본은 어떻게 한반도 호랑이를 사냥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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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기/야마모토 다다사부로 지음·이은옥 옮김/216쪽·2만 원·에이도스

1917년 11월 함경남도 신창에서 사냥꾼들이 포획한 호랑이를 놓고 찍은 기념사진. 오른쪽 사진은 사냥 모임을 조직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왼쪽)와 조선인 포수 최순원. 에이도스 제공
1917년 11월 함경남도 신창에서 사냥꾼들이 포획한 호랑이를 놓고 찍은 기념사진. 오른쪽 사진은 사냥 모임을 조직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왼쪽)와 조선인 포수 최순원. 에이도스 제공
제목 그대로 ‘호랑이를 정복한 기록(征虎記)’인 이 책은 한국인에겐 꽤나 씁쓸한 내용이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일본인 부호가 일본과 조선 사냥꾼을 대동하고 호랑이를 잡으러 다니며 남긴 일기와 사진을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정호기엔 더더욱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이 담겼다. 일단 정호기는 당시 호랑이를 다룬 거의 유일한 사료다. 책에 실린 풍부한 사진은 일본이 호랑이 멸종에 나서며 내세운 해수구제(害獸驅除·인간에게 해로운 동물을 없앤다) 정책의 실상을 알 기회를 제공한다. 포획된 시체나 박제된 신세긴 하지만 100년 전 한국에 살았던 호랑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山本唯三郞)의 원문보다는 이 책의 의미와 배경을 설명한 해제가 더 읽을 만하다. 한국범보존기금(대표 이항 서울대 교수)과 1986년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를 쓴 엔도 기미오(遠藤公男) 일본 야조회((野鳥會) 명예회장의 글을 보면 전후 맥락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책에도 해제가 원문보다 앞에 실렸다.

학계에선 한반도 호랑이 멸종 원인으로 병자호란 전후 발생한 우역(牛疫·소 전염병)의 영향이 더 컸을 것이란 시각이 있다. 이 책의 발굴과 해제 작업에 참여한 김동진 한국교원대 강사가 이런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해 지난해 동아일보(4월 24일자 A22면)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와 별개로 야마모토가 “옛날 무장은 진중의 사기를 높이려 조선 호랑이를 잡았지만, 우리는 ‘일본 영토’에서 호랑이를 잡았다”고 말하는 대목은 마음이 휑해진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정호기#호랑이#일제강점기#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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