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시인의 쓸쓸한 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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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차가운 사탕들’낸 이영주 시인

등단 15년 차에 세 번째 시집 ‘차가운 사탕들’을 펴낸 이영주 시인.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등단 15년 차에 세 번째 시집 ‘차가운 사탕들’을 펴낸 이영주 시인.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노인들은 서로를 죽은 자로 대할 수 있기 때문에 등을 쓸어준다. 솟아오른 등뼈가 조금씩 부드러워지도록. 나는 어떤 뼈의 성분에 숨어 있었나.’(‘야유회’ 중)

이영주 시인(40)은 최근 2년여 사이 가까운 이들과 사별했다. 외삼촌이 위암으로 숨진 뒤 정정하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별세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 시간이 시인에게 찾아왔다.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차가운 사탕들’(문학과지성사)에는 그런 나날이 깃들어 있다.

‘동굴 안에 주저앉아/물처럼 번져가고 있다//돌이 자라난다//마음이 추락하는 동안//공기를 닦고 있는 검은 손//아무리 문질러도/이곳은 밝아지지 않는다/한밤/밤의 한가운데//떠나간 사람은 떠나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종유석’ 중)

시집엔 쓸쓸하고 어두운 정서가 지배하지만 11일 만난 시인은 의외로 유쾌하고 명랑했다. “주변사람이 내 시를 읽고 놀란다. 개그맨 같은 나와 시 사이에 간극이 크다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를 가리려고 명랑한 채 하는지도 모른다. 쓸쓸함은 날씨처럼 날마다 다른 형태로 곁에 있다. 그런 외로움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내가 가는 곳은 홀로 떨어져서 조금씩 떠내려가는 곳 가지 않아도 이미 세계의 끝이라는 문장을 쓰고 있다 아, 그렇다면 세계의 모든 괴물 중에 내가 제일 큰 괴물’(‘마흔’ 중)

무남독녀인 시인은 어릴 적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버지가 들여놓은 한국문학전집이 소녀의 친구였다.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을 때만 해도 그의 꿈은 소설가였다. 시 창작 수업 시간에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서 뒤늦게 시에 눈을 떴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꽉 쥐어야만 하는 일의 긴 노역./입을 벌리면/바람이 올 때/공중이 될 수 있나./너의 등을 떠날 수 있나.’(‘고양이’ 중)

시인은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했고, 2010년 펴낸 두 번째 시집 ‘언니에게’(민음사)로 주목을 받았다. 시인은 “‘언니에게’가 10, 20대 때 광란의 시절에 대한 통과의례 같았다면 이번 시집에는 더 깊이 들여다본 생의 어두운 부분이 담겼다”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이영주#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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