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왜 기만적인 시장주의를 아름답다고 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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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름다운 새옷/잉고 슐체 지음·원성철 옮김·160쪽·1만2000원·오롯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의 삽화. ‘무능한 멍청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을 만든다는 두 사기꾼의 작업 진행 과정을 보러 간 장관은 옷감을 잣는 물레가 텅 빈 것을 보고도 자신이 무능하고 멍청하게 비칠까봐 “무늬며 색깔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는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동독 출신 소설가 잉고 슐체는 이 동화에 빗대 장밋빛 약속을 늘어놨지만 부익부 빈익빈만 가속화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자기기만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한다. 오롯 제공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의 삽화. ‘무능한 멍청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을 만든다는 두 사기꾼의 작업 진행 과정을 보러 간 장관은 옷감을 잣는 물레가 텅 빈 것을 보고도 자신이 무능하고 멍청하게 비칠까봐 “무늬며 색깔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는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동독 출신 소설가 잉고 슐체는 이 동화에 빗대 장밋빛 약속을 늘어놨지만 부익부 빈익빈만 가속화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자기기만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한다. 오롯 제공
제목만 보고 패션 관련 책이라 오해하지 마시길. 힌트는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에 숨어 있다. 벌써 눈치를 챘다면 ‘당신은 센스쟁이!’.

너무도 유명한 동화 내용을 자세히 풀어놓진 않겠다. 다만 옷을 좋아하는 임금님, ‘직책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나 멍청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주겠다는 두 명의 사기꾼, 그 옷에 대한 소문만 듣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아름답다’를 연발하는 신하와 국민들. 그리고 그런 어른들의 허위로 가득 찬 퍼레이드를 보다가 ‘임금님이 벌거숭이야’를 외친 작은 소년의 캐릭터를 기억해 두길 바란다.

동독 출신의 소설가로 지난해 한국에서 만해대상을 수상한 잉고 슐체(52)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에서 이 동화적 상황이 두 번 펼쳐졌다고 술회한다. 첫째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다. 프란츠 퓌만이란 동독 작가는 사회주의 체제의 본질적 모순을 직시하지 못하고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는 동독인들을 향해 ‘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임금님의 있지도 않은 옷에 기름때가 묻었다고 흠을 잡는 게 얼핏 용감해 보일지 모르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사이비 비판일 뿐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상황은 무얼까. 동유럽권의 몰락 이후 세계 유일의 대안처럼 떠오른 신자유주의의 횡행이다. 1989년까지 자본주의를 체험하지 못했던 슐체의 눈에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가 거대한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익의 발생은 자본가에게 넘기되 그러다 손실이 발생하면 가난한 국민에게 떠안기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옷’이란 어처구니없는 찬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제가 높은 금리의 예금상품 하나를 발견해서 그 예금에 들었다고 해 봅시다. 그 경우에 저는 이자를 한 푼도 못 받을 수도, 원금의 일부분이나 전부를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은행이 파산의 위기에 놓이면 어쩔 수 없는 일일 테니까요. 만약 주식 같은 데 투자한다면 그 위험은 더 커질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은행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윤이 발생하면 그 이윤은 당연히 제 몫이겠지만 손해가 생겨도 그 손해는 사회적으로 메워집니다. 그러니 저는, 그러니까 은행은 어떤 경우에도 손해를 보지 않는 셈입니다.”

2012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펼친 저자의 연설을 책으로 옮긴 이 책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그녀 역시 동독 출신이다)가 2011년 명명한 ‘시장 동형(同形)적 민주주의’를 직접 겨냥한다. 슐체는 신자유주의에 때 묻지 않은 ‘작은 소년’의 시선으로 이 시장 지배적 민주주의라는 새 옷이 허구의 옷이라고 고발한다.

“국가는 우리한테 세금을 거둬 은행을 도와주고, 은행은 다시 그 돈을 먹고살기에도 허덕이는 우리한테 이자를 받고 빌려줍니다. 뭔가 불공정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요상하기 짝이 없는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요?…도대체 이런 새 옷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사람들은 이런 새 옷에 대해 왜 그토록 환호하는지 참으로 의아할 따름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이런 비판이 옛 사회주의로 돌아가자는 소리가 아님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이 부적절한 미래(동독)로부터 현재(통독)로 돌아온 기분에 빠져든다고 말한다. 옛 소련과 동유럽권의 붕괴로 해방에 대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저항의 의지를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만들어지면서 자신이 다시 간신히 탈출한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라’로 회귀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흔히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민주주의와 시장주의의 두 바퀴로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동유럽권이 붕괴한 뒤 그 앞바퀴를 시장주의가 차지하게 됐다. 저자는 그 결과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만 초래했다며 시장 동형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동형적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 이제 당신이 답할 차례다. 우리들의 임금님은 아름다운 새 옷을 입고 있는가, 벌거벗고 있는가.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우리의 아름다운 새옷#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시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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