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민주적 아바도 vs 독재적 토스카니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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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왼쪽)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동아일보DB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왼쪽)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동아일보DB
20일 눈을 감은 이탈리아의 대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에 대해 외신들은 ‘민주주의적 지휘거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나는 보스가 아니다. 우리(지휘자와 단원)는 함께 일할 뿐”이라는 그의 말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젊은 시절 아바도는 밀라노에서 당대 지휘 거장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의 리허설을 지켜보면서 지휘자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단원들에게 욕을 하고 연습장 밖으로 내쫓기까지 하는 모습에는 혐오감을 가졌다고 합니다. 토스카니니에 대해서는 그의 NBC교향악단 단원들이 ‘토스카니니가 온다!’라는 말로 아이들의 울음을 그치게 했다는 일화도 알려져 있죠.

지휘란 한 사람이 여러 사람 위에 군림하는 행위입니다. 여러 명이 저마다 자신의 음악적 해석을 주장하면 올바른 합주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민주적 지휘’라는 것이 가능할까요. “점잖은 말을 쓰고 온화한 표정으로 단원들을 대하는 게 전부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토스카니니나 푸르트벵글러, 카라얀을 포함한 예전 세대 지휘자들은 먼저 악보를 보고 머릿속에 완벽한 표현을 상상한 뒤 단원의 역량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그 표현을 실제의 연주로 구현했습니다.

아바도의 스타일은 이와 달랐습니다. 자기만이 상상한 표현을 관철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연주 현장에서 발생하는 섬세한 분위기와 그때마다의 영감은 도외시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바도는 그날그날 현장에 공기처럼 떠도는 단원들의 분위기와 컨디션을 파악해 연주에 반영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톰 서비스가 쓴 ‘마에스트로의 리허설’(아트북스)에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주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음악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놀라운 재능이 있습니다. … 음악이 알아서 연주되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앞에 서서 벌어지는 일을 조율한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러나 이것은 자연히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것을 머릿속에, 몸속에 완전히 담아두고 있습니다.”

아바도 혼자만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지휘자들이 지난 시대의 독재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조율형’ 지휘자로 각인됐습니다. 생존 거장으로는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인 마리스 얀손스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아바도가 이 새로운 시대를 앞장서 이끌었고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교향악단 지휘자 여럿이 단원들의 집단행동으로 물러났습니다. 개인적 실수가 이유라고 하지만, 우연인지 그들 대부분이 ‘독재형’ 지휘자로 불렸습니다. 단원들도 대부분 ‘물러난 지휘자의 리더십이 시대에 맞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억해둬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진정한 ‘민주적’ 마에스트로상(像)은 온화한 표정을 하고 약속된 시간에 연습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강압보다는 자연스러운 조율로 음악이 악단에 침투하도록 만드는 데서 나온다는 것 말입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클라우디오 아바도#아르투로 토스카니니#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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