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추기경 뒤엔 옹기 팔며 사제의 길 이끈 어머니 있었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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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수환-염수정 추기경 닮은꼴 삶

1993년 당시 서울대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왼쪽)과 교구 사무처장이던 염수정 추기경이 등산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두 추기경은 1992년부터 7년간 같은 교구에서 지냈다.
1993년 당시 서울대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왼쪽)과 교구 사무처장이던 염수정 추기경이 등산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두 추기경은 1992년부터 7년간 같은 교구에서 지냈다.
“옹기와 순교자 집안, 어머니, 형제 신부, 겸손과 소신….”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이 된 고(故) 김수환 추기경(1922∼2009)과 12일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된 염수정 추기경(71)의 신앙과 삶의 발자취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정표다.

김 추기경은 1969년 47세 때 한국 최초의 추기경에 임명됐다. 당시 전 세계 136명의 추기경 중 최연소였다. 마산교구장을 거쳐 서울교구장이 된 지 불과 1년밖에 안 된 시점이라 훗날 서울 텃세에 시달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반면 서울대교구에서 사제가 된 염 추기경은 줄곧 서울대교구에서 활동하다 2002년 59세에 주교가 됐다. 교구장이 된 것은 2012년 69세로 비교적 늦은 나이다. 이런 차이점은 시대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교황청은 김 추기경의 능력뿐 아니라 ‘젊음’이 역동적인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교계의 중론이다.

여러 이정표 중 특히 도드라진 것은 어머니였다. 김 추기경 어머니 서중하 여사(1955년 작고)는 평생 옹기와 포목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니면서 두 아들을 성직자로 이끌었다. 김 추기경의 어머니는 어린 추기경과 세 살 위의 형(김동한 신부·1983년 선종)을 불러 “나중에 신부가 되라”고 직접 말했다. 훗날 김 추기경은 “장사를 하다 25세쯤 결혼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청천벽력 같았다”고 회고했다.

염 추기경의 어머니 백음월 여사(1995년 작고)는 임신한 순간부터 “아들이면 사제, 딸이면 수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3형제를 신부의 길로 인도했다. 두 추기경은 집안이 모두 가톨릭 순교자 집안에, 옹기를 구워 팔며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켜왔다는 점도 닮았다.

두 추기경은 1992년부터 7년간 서울대교구에서 교구장과 교구 사무처장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지냈다. 김 추기경이 76세에 교구장 직에서 물러날 때 염 추기경도 교구 본당 신부로 떠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나중에 염 추기경이 주교가 됐을 때 김 추기경은 이렇게 덕담을 겸한 인물평을 했다. “염 주교, 훤한 인물이 말해주듯 인내와 겸손의 덕을 갖췄어요.”

염 추기경이 2010년 김 추기경 선종 1주기를 맞아 교구 차원에서 재출범한 옹기장학회의 초대 이사장을 맡은 것도 두 추기경의 예사롭지 않은 인연을 보여준다.

두 추기경 모두 넓은 포용력을 지녔지만 신앙적 소신에는 굽힘이 없었다.

교계의 한 중견 신부는 “두 추기경의 가장 닮은 점은 ‘고집, 또는 외유내강형 소신’”이라며 “두 분 모두 겸손과 관용이 몸에 배어 있지만 신앙에 입각한 원칙은 양보하지 않는 분들”이라고 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김수환 추기경#염수정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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