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죽은 엄마와 화해하려… 부엌으로 간 종군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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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레시피 따라하며 상실감 회복
◇내가 엄마의 부엌에서 배운 것들/맷 매컬레스터 지음·이수정 옮김/312쪽·1만3500원·문학동네

어린 시절 저자와 그의 엄마는 부엌에서 항상 유쾌하고 즐거웠다. 누나 제인(오른쪽) 역시 그랬다. 부엌이 행복했던 건 음식이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문학동네 제공
어린 시절 저자와 그의 엄마는 부엌에서 항상 유쾌하고 즐거웠다. 누나 제인(오른쪽) 역시 그랬다. 부엌이 행복했던 건 음식이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문학동네 제공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 순간, 모든 게 무너져 내린다. 단지 삶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울음도 나오질 않는다. 좀 더 찾아뵐 것을, 좀 더 잘 모실 것을. 하물며 속 썩인 일이 잦았다면 죄책감은 몇 곱절로 커진다. 하물며 저자는, 어머니가 죽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자에 알코올중독자였다.

미국 일간지 뉴스데이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하며 1997년 퓰리처상도 받았던 저자는 문득 자신이 치러야 할 ‘전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목숨을 걸고 분쟁지역을 뛰었지만 어쩌면 그건 타인의 싸움이었다. 한때 누구보다 사랑했으나, 또 한때 누구보다 미워했던 엄마.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응어리는 목 끝까지 차 있었다. 그 씻김굿을 위해 저자는 엄마의 요리책을 꺼내 들었다.

왜 하필 부엌이냐고? 그곳은 저자에게 어머니와의 사랑이 차올랐던 공간이자 그 애정이 사그라진 장소였다. 아들은 엄마가 정성껏 차려낸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만끽했다. 허나 불지불식간 찾아온 병은 엄마를 부엌에서 내몰았다. 흥미도 재능도 순식간에 지워졌다. 차갑게 식어버린 냄비. 모자 관계도 얼어붙었다. 죽음이 일상인 전쟁터를 전전한 것도 그 결핍이 자신을 극한으로 내몬 결과였던가. 저자가 엄마의 요리 레시피를 쫓아간 건 바로 그 상실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나는 엄마를 되찾아올 한 가지 방도를 찾았다. 당장 내 집 부엌으로 달려가서 엄마의 요리들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 엄마의 돼지갈비, 초콜릿 크리스피, 딸기 아이스크림…. 어쩌면 그 음식들이 내 기억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내가 잊고만 싶어 했던 과거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어줄지 모른다.”

물론 쉽지 않았다. 처음엔 엄마의 방식을 무조건 지키려는 강박관념에 요리 자체를 즐기지 못했다. 당시 저자는 아내와 아기를 가지려 간절히 노력 중이었다. 그들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음식을 만들며 그는 천천히 변화한다. 사랑하는 이 앞에 식탁을 차려 내는 게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그 옛날, 엄마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참 애잔한 책이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회한이 읽는 내내 가슴을 저민다. 어머니의 정신병은 저자의 인생과 가족 모두를 엉망으로 휘저어 놓았다. 그 감당할 수 없던 현실은 감수성 예민한 10대의 분노를 엄마에게 쏟아 붓게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안다. 그게 왜 엄마 탓인가. 따지고 보면 가장 힘든 건 엄마였을 텐데. 그런 과거와 화해하는 일은 어떤 전투보다 치열하고 애달팠다.

신파로 흐를 수 있었던 레퍼토리를 담담한 문체로 풀어낸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저자는 현 시점 얘기는 과거형으로 쓰면서 옛 추억은 현재형을 고수한다. 명확한 의도야 알 수 없으나, 꽈리처럼 뒤섞여 서로를 지탱하는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어느 순간 저자는 깨닫는다. 엄마의 방식을 더이상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요리법은 재료 몇 g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시켜 먹거나 외식도 괜찮다. 진짜 핵심은 우리 앞에 마주 앉은 그들, 그리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엄마로부터 그 마지막 선물을 건네받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내가 엄마의 부엌에서 배운 것들#부엌#엄마#요리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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