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CAR]車가 패션이 되고, 놀이기구가 되는 신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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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이상의 매력, 서킷 주행

경제 규모로 보면 이제 한국을 ‘선진국’이라 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국민들이 ‘삶의 질’을 따질 정도가 되면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서 놀이도구나 패션의 일부분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의식주’에 이은 ‘의식주차(衣食住車)’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를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면서 자동차 회사들도 ‘질’을 따지기 시작했다. 자동 에어컨이나 열선시트를 ‘고급 차’의 기준으로 삼던 수준에서 벗어나 친환경 염색 기술로 가죽시트를 만들고 캐시미어 소재로 매트를 제작하거나 자동차 디자인을 색다르게 하기 위해 유명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는 등 삶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세라티가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차량 디자인을 함께 고민하고, 피아트가 구치와 함께 자동차를 꾸미거나 현대차가 에르메스, 프라다와 함께 독특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들이 협업해 만든 자동차를 타는 것만으로 삶의 질이 나아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자동차를 타고 즐기는 문화도 함께 달라져야 한다. 캠핑카를 타고 야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듯 최근에는 자동차 자체를 즐기기 위한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동호인들끼리 자체적으로 모터쇼를 열거나 서킷(경주용 도로)을 빌려 주행을 즐기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유럽에서는 ‘서킷 주행’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됐지만 한국에선 최근 들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열린 ‘포뮬러원(F1)’도 서킷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가장 빠른지 겨루던 것이 ‘국가 대항전’으로 발전한 것이다.

서킷을 ‘속도 내는 데 중독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서킷은 일종의 휴식 공간이나 다름없다. 빠른 속도로 차를 몰기는 하지만 마주 오는 차가 없고 규칙을 준수하기 때문에 일반도로보다 더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 서킷을 ‘어른들의 놀이터’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동차를 이동수단으로만 여기는 사람들도 서킷에 한번 갔다 오면 고정관념을 바꾸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일 주행권을 끊어 서킷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자동차 회사가 주최한 ‘주행회’에 참석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주행회에 참석하면 같은 브랜드의 자동차끼리 달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요즘에는 다양한 자동차들이 모여서 랩 타임(서킷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 측정을 하며 즐기는 행사가 자주 열리고 있다. 한국타이어가 최근 강원 인제군 기린면에 있는 ‘인제 스피디움’에서 열었던 행사가 대표적이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BMW, 아우디 등 다양한 자동차 소유주들이 참가해 서킷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서킷에서 가속장치를 끝까지 밟고 달린 사람들은 집에 돌아갈 때 오히려 속력을 내지 않고 느긋하게 운전하는 경향이 있다. 도로 위에서의 경쟁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유럽의 자동차 문화가 모터스포츠를 기반으로 발전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서킷 문화가 정착되면 교통 문화도 좀 더 나아질지 모른다.

신동헌 남성지 ‘레옹’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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