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잡음’ 빚는 絃의 마술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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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10일 오스트리아 국제실험음악축제 맡은 전위 첼리스트 이옥경

“연주를 해보라”고 하자 첼리스트 이옥경은 밀도 높은 즉흥연주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멈춰도 된다”는 사진기자의 외침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연주를 해보라”고 하자 첼리스트 이옥경은 밀도 높은 즉흥연주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멈춰도 된다”는 사진기자의 외침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그르루르르륵… 쓰워어어어억… 쓰르르르르릅….

고막 위로 다리 가득 잔가시가 돋은 고약한 벌레라도 기어 다니는 걸까. 물체 표면이 예리한 것에 긁히는 소리를 못 견딘다면 첼리스트 이옥경(38)의 앨범 ‘길’(2013년)에 손대지 않는 편이 낫다. 27일(미국 시간) 별세한 루 리드와도 함께 연주하며 교류를 한 그의 음반은 첼로 한 대만으로 연주됐지만, 현을 극단적으로 강하고 빠르게 마찰시켜 내는 기괴한 잡음과 배음(倍音)의 조합과 연쇄가 청자를 괴롭힌다.

“미술은 추상적이어도 받아들여지지만 음악은 아니죠. 참을성과 호기심을 갖고 귀를 열면 좀 더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텐데요.”

오스트리아 벨스에서 매년 열리는 국제 실험음악축제 언리미티드 뮤직페스티벌은 27회(11월 8∼10일)를 맞아 이 한국인에게 기획을 통째로 맡겼다. 이옥경은 주제를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이즈’로 정했다. 세계의 다양한 노이즈 음악가를 초청해 17회의 공연을 꾸민다.

1990년대 말부터 존 존, 로리 앤더슨, 서스턴 무어, 짐 오루크, 에번 파커 같은 실험적 음악가들과 협연해온 이옥경은 한국에는 덜 알려졌지만 해외에선 쉴 새 없이 러브콜을 받는 연주자다. 그가 2일 오후 4시 서울 통인동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 2년 만의 국내 단독 공연인 ‘아트 오브 노이즈’를 연다.(2만∼2만5000원·02-941-1150)

세계음악계의 최전위에 있는 이옥경은 그저 평범한 한국의 ‘예고생’이었다. “일곱 살 때 첼로를 잡았고 예고까지 나왔지만 첼로를 너무 하기 싫었어요. 서울대 입시에서 떨어지자 내심 신까지 났죠.” 그 길로 부모의 허락을 받아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음대에 유학했다. ‘판에 박힌 음악’으로부터의 도피였다. 편곡과 영화음악을 전공한 그는 1998년쯤 혼자 첼로 연주를 연습하다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발견했다.

모친이 한국에서 보내준 서도민요 음반도 양분이 됐다. “미분음(微分音·평균율 음계의 최소 단위인 반음 간격 사이에 있는 음)의 활용 방식이 신선했어요. 창(唱)의 걸걸한 음색도 첼로에 적용해보고 싶었고요.” 이옥경은 존 존의 앨범 ‘딕테/리베르 노부스’(2010년)에 멀티미디어 작가 차학경(1951∼1982)을 추모하는 연주와 한국어 내레이션도 담았다.

그는 지금 ‘홈리스’다. 1년 반 전 뉴욕의 아파트를 판 뒤 미국과 유럽을 돌며 1년에 100회 이상 공연한다. 벨기에 브뤼셀의 실험음악 창작공간 ‘Q-O2’의 내년 입주 예술가로 선정됐지만 눌러앉을 생각은 없다. “연말연초엔 소닉 유스의 전 멤버들과 뉴욕에서 공연하고, 3월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영상작가와 합작해요. 5월엔….”

여전히 최고의 연습교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라는 이옥경은 “즉흥음악과 실험음악은 주류 음악과 끝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왔다”고 했다. “리드만 해도 오넷 콜먼(미국 프리재즈 연주자)의 열성 팬이었어요. 지금 우리는 당장 소비될 수 있는 음악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첼리스트#실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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