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교수 “라이벌 김현의 내 비판을 보면서 나의 참모습을 알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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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교수,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출간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김현의 유작 ‘행복한 책읽기’에서 자신에게 가해진 비판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침묵을 지켜 온 것은 사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정곡을 꿰뚫은 지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김현의 유작 ‘행복한 책읽기’에서 자신에게 가해진 비판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침묵을 지켜 온 것은 사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정곡을 꿰뚫은 지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누가 보아도 그 열정적 독서력에 탄복하지 않을 재간이 없을 정도이다. 그야말로 작품 발표 직후 따끈따끈할 때의, 작품 고유의 ‘아우라’가 이렇게 포착되기는 이 나라 문학사 이래 처음이라 할 만하다. 가히 문학 대통령인 셈.”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낸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그린비)에서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사진)에게 바친 헌사다. 두 사람은 국문학사를 18세기까지 확대한 ‘한국문학사’(1972년)를 공동 집필한 학문적 동지였다. 김현은 책 서문에서 “한 사람의 실증주의적 정신(김윤식)과 한 사람의 실존적 정신분석의 정신(김현)이 상호보족적인 것임을 확인하게 된 것은 우리로서도 크나큰 즐거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 교수는 김현의 유작 ‘행복한 책읽기’에서 가장 많은 비판의 화살이 꽂힌 과녁이기도 했다. “김윤식 비평의 본질은 ‘열정이란 재능을 가리킵니다. 열정 없는 재능이란 없지요’라는 (김윤식의) 말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말이 되돌아가야 하는 것은 그 자신에게로이다”거나 “그는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열 줄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 늘리기는 수수께끼의 묘미인 놀라움이 없기 때문에 진부하고 지겹다”는 가혹한 내용이다.

김 교수는 “김현의 비판을 통해 김윤식은 비로소 속으로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던 자기의 참모습을 투명체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시골에서 태어난 자신은 까마귀 붕어와 함께 살아야 할 재능밖에 없었지만 학문의 영역에 잘못 들어선 탓에 두더지처럼 ‘자료 뒤지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자신의 ‘실증주의적 정신’이야말로 진퇴양난의 실존적 위기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김현은 죽음의 시기에 와서야 김윤식의 내면을 분석해 냈다. 그 방법은 ‘실존적 정신분석’이 아니라 김윤식에 대한 ‘사랑’이었다. 사랑하지 않고는 저토록 지속적으로 ‘실증주의적 정신‘의 궤적을 추적해 왔을 이치가 없다.”

그렇다고 망자에 대한 찬사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하버드대 출신의 영문학도 백낙청이 1967년 계간지 ‘창작과 비평’을 창간했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 김현이었는데, 이는 세상을 문학작품처럼 다 읽어내려 했던 김현의 문단 지배 욕망이 컸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창비의 출간이 ‘너희가 세계문학을 아느냐?’라는 무언의 외침이었다면 김현의 ‘문학과 지성’ 창간(1970년)은 “네가 한국문학을 아느냐!”라는 일갈이었고 그래서 한국문학사 쟁탈전의 양상으로 흘러가게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책에서 오구라 신페이의 국문학 이론을 각각 시적 직관과 해석학으로 돌파하려 한 양주동과 조윤제, 1960년대 불온시 논쟁을 펼친 김수영과 이어령, 스승 김동리의 유산을 각각 세계화와 토속화로 계승한 박상륭과 이문구까지 다섯 유형의 라이벌 의식을 다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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