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詩 보면 詩를 향한 순애보 느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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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 30여년 만에 첫 시선집 낸 황인숙 시인

황인숙 시인이 30년간의 시작 활동을 갈무리한 시선집 ‘꽃사과 꽃이 피었다’를 펴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황인숙 시인이 30년간의 시작 활동을 갈무리한 시선집 ‘꽃사과 꽃이 피었다’를 펴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시집을 10권쯤 낸 다음 시선집을 낼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일곱 권 만에 내게 됐네요. 꽤 오래 시를 쓴 건 맞는데, 시의 양이나 질을 돌아보면 선집을 내는 게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발랄함과 경쾌함의 아이콘, 문단의 자유로운 영혼인 황인숙 시인(55)이 첫 시선집 ‘꽃사과 꽃이 피었다’(문학세계사)를 냈다. 1978년부터 꼬박 30년 동안 쓴 시 중에서 69편을 엄선했다. “친구인 문학평론가 박혜경 씨가 시를 고르는 데 큰 도움을 줬어요. 저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보기에 좋은 시들이 많이 실려야 하잖아요.”

시인에게 시선집 표지에 핀 하얀 꽃사과꽃이 인상적이라고 했더니, 특유의 수줍은 소녀 같은 말투로 깨알 같은 설명이 돌아왔다. “꽃사과는 열매가 굵은 체리보다 약간 큰데, 꼭 보석처럼 생겼어요. 한 입 베어 물면 신맛이 찌릿찌릿하게 입속 가득 퍼져요.”

이번 선집은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같은 초기작부터 ‘가을날’ 같은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작품 세계를 연대기순으로 조망할 수 있게 구성했다. “예전에 쓴 시를 보면 시를 향한 당시의 제 순애보가 느껴져 느낌이 새로워요. 지금요? 지금은 순애보라기보다는 욕심 같아요. 근사한 시를 쓰고 싶다는 욕심이요.”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사는 시인은 매일 서울 용산 일대 길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기는 ‘캣 맘’으로 유명하다. 자기가 없으면 행여 길고양이들이 굶을까봐 장거리 여행도 자제한다. 시인을 잘 모르는 이웃들은 ‘왜 길고양이를 챙겨 동네를 지저분하고 시끄럽게 만드느냐’며 비난하기도 한다. 시인의 대답은 이번 시선집에 실린 ‘고양이를 부탁해’가 대신하는 듯하다. ‘잔인하고 무정한 이 거리에서/구사일생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들.//고양이들이 사라진 동네는/사람의 영혼이 텅 빈 동네입니다./이만저만 조용한 게 아니겠지요./그러면, 좋을까요?’

시인은 지난해부터 동아일보에 매주 세 차례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연재가 어느덧 140회에 이르렀다. “소개할 시를 고를 때 첫 번째 원칙은 제가 대꾸할 의욕이 생기는 시인가 하는 거예요. 제가 덧붙이는 해설이 행여 시의 의미를 한정짓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연재가 계속되는 한 제가 짊어질 몫이지요.”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시인은 청탁받은 원고를 일단 공책이나 원고지에 적었다가 나중에 ‘느릿느릿한’ 컴퓨터에 옮긴다고 했다. “글의 방향성이 분명한 산문을 쓸 때는 처음부터 컴퓨터 자판으로 쓸 때가 있는데, 시는 여전히 공책이나 원고지가 더 편해요. 침대 머리맡은 공책과 볼펜이 차지하고 있어요.”

시인의 말을 듣자니 시선집에 실린 ‘비명(碑銘)’의 구절이 먼 훗날 시인의 모습처럼 다가왔다. ‘그 여자를 반듯하게/편히 뉘어도 좋다./잊지 말아야 할 것은/그녀 가슴 위에 공책 한 권/그리고 오른손에 펜을 쥐어/포개어 놓으라.//비바람이 뚫고 햇살이 비워낸/두개골 속을//맑은 벼락이 울릴 때,/그녀 오른팔 뼈다귀는/늑골 위를 더듬으리./행복하게 삐거덕거리며.’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황인숙#꽃사과 꽃이 피었다#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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