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의 숨결이 살아있는 도시, 프라하]<상>프라하가 사랑한 알폰스 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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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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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서 간판까지…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무하 스타일’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꼽히는 프라하 시민회관에서는 알폰스 무하가 문고리 창틀 가구 등 실내장식부터 벽화까지 한 공간을 총체적으로 연출한 방을 볼 수 있다. 그는 민속의상을 입은 여인들과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새 등을 통해 슬라브 민족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냈다.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꼽히는 프라하 시민회관에서는 알폰스 무하가 문고리 창틀 가구 등 실내장식부터 벽화까지 한 공간을 총체적으로 연출한 방을 볼 수 있다. 그는 민속의상을 입은 여인들과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새 등을 통해 슬라브 민족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냈다.
《 중부 유럽의 체코는 멀지만 가까운 나라다. 서울에서 프라하에 가려면 비행기를 10시간 넘게 타야 하지만 강대국에 시달린 약소국이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그 역사와 문화를 알수록 마음의 거리는 금세 좁혀진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알폰스 무하-아르누보와 유토피아’전을 계기로 찾은 프라하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서구를 풍미한 아르누보의 거장 무하의 체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도시 곳곳에 남은 무하의 흔적들, 그가 조국에 선물한 마지막 역작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    
    
천년 고도(古都)의 기품을 자랑하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 옛 시가지를 중심으로 199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라하 역사지구’를 느리게 걷다 보면 체코의 자랑 알폰스 무하, 그가 이끌었던 아르누보의 정취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도, 프라하의 유서 깊은 복합문화시설에도 무하의 손길은 스며 있다.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은 호텔 유로파나 루체르나 빌딩은 오늘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 어떤 책보다 프라하야말로 무하와 아르누보의 유산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미술관’인 셈이다. 단순한 예술사조가 아니라 3세기에 걸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 아래 억눌린 체코 문화와 민족정신을 일깨우려는 움직임과도 맞물렸기 때문이다.

○ 아르누보의 향기를 찾아서

생활 속 예술을 내세운 아르누보는 고급과 저급, 순수와 응용미술의 경계를 허문 미술사조이자 예술운동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곡선을 살린 아르누보는 프라하에서 여전히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마다 음악축제 ‘프라하의 봄’ 개·폐막식이 열리는 스메타나홀과 전시장을 갖춘 프라하 시민회관은 가장 유명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이다. 1912년 문을 연 문화시설로 당시 내로라하는 체코 미술가들이 실내장식을 맡았다. 특히 무하의 방은 작가의 다재다능함을 증명한다. 슬라브적 모티브를 살려 사랑과 전쟁, 죽음을 표현한 벽화부터 전등, 소파, 커튼, 문고리까지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20세기 초 바츨라프 하벨 전 대통령의 할아버지가 건립한 루체르나 빌딩도 아르누보 투어에서 빠질 수 없다. 상점 카페 식당이 들어선 건물에는 우아함과 화려함이 조화를 이룬다. 1층 홀에선 체코의 중견작가 다비트 체르니가 제작한 거꾸로 선 기마상이 관광객을 반겨준다. 100년 전 건물과 현대 조각의 만남이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들려주는 듯하다.

○ 무하의 향기를 찾아서

알폰스 무하의 손녀 야르밀라 무하 플로츠코바 씨. 할아버지가 남긴 드로잉을 기반으로 장신구와 그릇 등 아트 상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프라하=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알폰스 무하의 손녀 야르밀라 무하 플로츠코바 씨. 할아버지가 남긴 드로잉을 기반으로 장신구와 그릇 등 아트 상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프라하=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옛 유대인 지구에 자리한 무하 부티크는 낭만적 세계를 현실로 불러오는 전시장이자 아트숍이다. 작가의 손녀 야르밀라 무하 플로츠코바 씨가 1988년부터 할아버지의 드로잉을 토대로 제작한 디자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원래 건축을 전공한 플로츠코바 씨는 아버지의 설득으로 아트 상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디자인은 부드러우면서도 복잡한 선의 아름다움이 특징적”이라며 “식물을 모티브로 할 때는 뿌리부터 꽃피는 과정까지 세밀하게 관찰한 뒤 작업을 시작하는 등 완벽함을 추구했던 예술가”라고 소개했다. 이어 “할아버지가 순수예술을 넘어 과자와 초콜릿 포장지까지 디자인한 이유는 예술은 모든 계층이 쓸 수 있고,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길거리 포스터부터 식당 간판까지 체코 어디서든 ‘무하 스타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부 유럽의 소국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를 배출했다는 자긍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무하가 창조한 아름답고 낙관적인 세계는 수난의 역사를 냉소적 유머로 대처한 체코 국민의 가슴을 따스하게 보듬어준 보물로 지금도 사랑받고 있었다.

프라하=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체코#프라하#알폰스 무하#플로츠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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