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국의 무예 이야기]조선 무기들의 궁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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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선 등패 곤방 장창이 主무기… 상극-상생 조합따져 전투 활용

결혼뿐만 아니라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무기에도 ‘궁합’이란 것이 존재한다. 여기에도 서로 만나면 극단적인 결과가 나오는 ‘상극(相剋)’이 있고, 서로 함께 싸우면 시너지가 나는 ‘상생(相生)’이 있다. 무기들의 궁합은 그저 관념적인 탁상공론이 아니다. 실전 경험을 통해 검증된 것들이다.
물고 물리는 무기 간의 먹이사슬

먼저 상극 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옛 사람들은 수많은 실전을 통해 특정 무기를 쓰는 사람들(물론 무술실력과 체력이 비슷하다고 가정)끼리 맞붙었을 때 그중 한 가지가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① 장창은 낭선으로 제압

낭선(狼선)은 조선후기에 보급된 무기다. ‘움직이는 가시철조망’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운데, 잔가지를 남겨놓은 길이 4m 이상의 대나무로 만든다. 대나무 잔가지에는 철편 수십 개를 단다. 철편에는 독약을 발라 조금만 스쳐도 적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

낭선과 장창(長槍)이 대결하면 낭선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낭선의 철편들은 창을 휘감아버릴 수 있다. 이때 창을 가진 사람은 제대로 된 방어를 할 수 없다.

② 낭선은 등패로 잡아

등패(藤牌)는 조선후기에 보급된 방패의 일종이다. 중국 남부와 베트남 등지에서 수입한 등나무로 만들었다. 등나무 줄기를 기름에 십여 차례 삶고 말리기를 반복하면, 가볍지만 웬만한 화살은 튕겨낼 정도로 단단한 방어무기가 된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의 화공(火攻)에 잿더미가 된 남만의 등갑보병이 바로 이런 등나무로 된 갑옷을 입었다. 등패는 가볍고 견고한 것이 장점이었지만 그 재료가 수입품인지라 가격이 꽤 비쌌다. 그래서 많은 수가 보급되지는 못했다.

무시무시한 낭선과 등패가 싸우면 의외로 등패 쪽이 승산이 높았다. 상대가 기다란 낭선을 크게 휘두를 때는 방패 뒤에 숨어 있다가 기회를 보아 교묘하게 파고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접전에서는 낭선이 맥을 추지 못한다. 병서에서는 이에 대해 ‘민첩한 것이 둔한 것을 이기는 섭리’라고 했다.

③ 등패는 곤방으로 대응

곤방(棍棒·‘봉’으로 쓰지만 ‘방’이라고 읽는다)은 단단하고 둥근 막대기다. 조선후기에는 ‘압취(鴨嘴)’라고 해서 오리주둥이와 비슷한 짧은 창날을 봉 위에 끼워 사용하기도 했다. 곤방은 밥을 짓는 화병(火兵)이 들고 다니며 솥을 거는 데 쓰기도 했고, 물건을 매달아 운반하는 용도로도 썼다.

곤방과 등패가 싸우면 곤방이 더 유리했다. 장창보다 짧은 곤방은 비교적 근거리에서도 전투를 할 수 있으며, 위아래가 따로 없기에 번갈아 가며 빠르게 등패를 때려 위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 병서에서는 이것이 마치 지게 작대기로 거북이 등딱지를 앞뒤로 두드리면 거북이가 뒤집어지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④ 곤방은 장창에 취약

장창은 낭선처럼 길이 4m가 넘는 긴 무기다. 쉽게 부러지지 않도록 몇 개의 나무를 덧댄 합목으로 만들어 썼다. 보통 창이라고 하면 주로 찌르는 무기로 생각하는데, 장창은 워낙 길이가 길어 높이 들었다가 내려치는 용도로도 많이 썼다.

장창은 특히 빠르게 달려오는 적의 기병을 상대하는 무기로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실전에서는 주로 창 자루를 땅에 박아놓고 비스듬히 세워 적 군마의 목을 겨냥하는 식으로 사용했다. 말이 창에 찔리면 아무리 철갑기병이라도 땅에 고꾸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장창과 곤방이 싸우면 대부분 장창이 이겼다. 서로 양쪽에서 찔러 들어가면 긴 무기가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기의 특성을 알고 싸워야 승리한다

이렇게 조선시대 무기의 특성들을 살펴보면 ‘절대강자’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장창은 낭선에, 낭선은 등패에, 등패는 곤방에 패한다. 그리고 다시 곤방은 장창의 밥이 되고 만다. 서로 물고 물리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무기 사이에 생기는 상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무기를 조합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예를 들면 낭선과 등패가 한 조를 이뤄 전투에 나가는 것이다. 긴 낭선은 적을 공격하거나 멀리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등패는 그 아래에서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니며 방어를 맡는다. 여기에다 낭선을 사용하는 병사는 몸에 짧은 칼을 한 자루 차고 근거리에서 일어나는 비상 상황에 대비하게 했다. 등패수는 표창을 이용해 먼 거리의 적을 공격했다.

낭선, 등패, 장창, 곤방, 당파 등 여러 가지 무기를 지닌 병사 12명을 한 조로 묶는 진법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조선후기의 각개전투용 소형 진법인 원앙진(鴛鴦陣)이다. 이 진법에 ‘원앙’이란 이름이 붙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원앙은 부부금슬이 좋아 한 마리가 죽으면 나머지 한 마리도 짝을 따라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 원앙진에 참여하는 병사들은 소속대원을 지키지 못할 경우 나머지 대원들이 모두 처벌을 받았다. ‘전우끼리 원앙새처럼 아끼고 돌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옛 사람들도 무기의 궁합을 제대로 맞춰 효과적인 전투능력을 끌어내기 위해 고심했다. 병법에서는 이를 ‘장이위단(長以衛短·긴무기로 짧은 것을 지키고)’ ‘단이구장(短以救長·짧은 무기로 긴 것을 구한다)’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군대에서도 서로 상극인 전차와 헬기를 한데 묶은 전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궁합이 맞지 않아도 잘사는 사람도 많고,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 무기를 썼음에도 승리한 전투도 많다. 이것은 궁합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유연한 개념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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