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아디다스와 축구용품의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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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잘터지는 공… 초경량 신발과 유니폼…
축구를 예술로 끌어올린 건 ‘용품의 과학’

부산아이파크의 박종우 선수가 현란한 볼 컨트롤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축구화와 유니폼은 선수의 기량 발휘에 큰 영향을 준다. 아디다스 코리아 제공
부산아이파크의 박종우 선수가 현란한 볼 컨트롤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축구화와 유니폼은 선수의 기량 발휘에 큰 영향을 준다. 아디다스 코리아 제공
1954년 7월 4일 스위스 베른의 반크도르프 스타디움. 당시 ‘매직 마자르’라 불리던 세계 축구의 절대 강자 헝가리와 서독이 맞붙었다. 헝가리의 전력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 3년간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국제대회 성적…. 반면 서독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월드컵에 복귀한, 유럽의 중위권 팀일 뿐이었다.

첫 경기에서 한국(사상 첫 본선 진출)을 9-0으로 유린한 헝가리는 브라질과 우루과이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에서도 경기 시작 8분 만에 2골을 넣고 앞서나갔다. 그런데 예상외로 서독이 연속 골을 넣고 동점으로 전반전을 마쳤다. 갑작스레 비가 내린 후반전에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었다. 서독은 종료 6분을 남기고 역전골을 만들어 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이것이 바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베른의 기적’이다.

기적의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바로 갑작스러운 비와 서독 팀의 축구화였다. 서독 팀은 비가 오자 축구화의 스터드(축구화의 징)를 쇠로 된 것으로 바꾸었다. 금속 스터드는 선수가 젖은 땅에서 고무나 플라스틱 제품보다 더 유리하게 경기하도록 해 준다. 당시 서독 팀의 축구화는 아디다스의 창업자 아디 다슬러가 고안한 스터드 탈착식 제품이었다.

아직도 아디다스는 나이키와 더불어 세계 축구용품의 쌍벽으로 남아 있다. 이런 회사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연히 축구의 역사도 알 수 있는 법. 아디다스의 발자취를 통해 축구 용품의 역사를 알아보자.

공인구 반발력 높이자 골키퍼 수난

아디다스의 축구공은 1970년부터 월드컵 공인구로 쓰여 왔다. 대회마다 신기술이 반영된 새로운 공이 나왔고 그와 함께 세계 축구도 발전해 나갔다. 가장 특기할 만한 변화는 1990년대 들어 일어났다. 전 세계 축구팬들은 좀 더 박진감 있고 골이 많이 터지는 경기를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1994년 미국 월드컵의 공인구 ‘퀘스트라’다. 이 공은 미세한 공기층이 있는 합성수지(기포 강화 플라스틱)로 반발력과 회전력을 크게 향상시켜 경기당 평균 2.71골이 터지게 만들었다. 이것은 이전 대회보다 평균 0.5골이 많은 수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트리콜로’는 월드컵 최초로 컬러 디자인을 채택했다. 이 공 역시 기포 강화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했으며, 표면을 최대한 매끄럽게 해 더욱 날카로운 슈팅이 가능하게 했다. 이 때문에 ‘골키퍼 수난시대’란 말이 탄생했다.

아디다스의 축구공은 지난해부터 한국 K리그의 공인구로 사용되고 있다. 아디다스와 K리그가 3년간의 공식 후원 계약을 맺은 덕이다. 새 공인구는 반발력이 강해 공격수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다. 이 공을 사용한 뒤부터 K리그가 좀 더 화끈하고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평가가 많다. 서정원 수원삼성 감독은 “탄성이 뛰어나고 가벼워 공격수들에게 유리한 공”이라고 평했다.

지난 세월 동안 공뿐만 아니라 유니폼도 많이 변했다. 원래 축구복은 면 소재 제품이 많았다. 면은 땀을 잘 흡수하는 장점이 있지만, 흡수한 수분이 잘 마르지 않아 축축한 상태로 있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서 축구 유니폼은 점차 화학섬유(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주로 폴리에스테르 제품을 쓴다.

아디다스는 1990년대 초 K리그와 인연을 맺어 ‘아디다스컵’ 대회를 만들기도 했다. 가장 많은 팀을 후원할 때(1996년과 1997년)는 무려 8개 팀이 아디다스 유니폼을 입었을 정도였다. 당시의 유니폼을 살펴보면 오늘날과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예전의 유니폼은 지금보다 많이 헐렁하고 ‘일상복 디자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소재는 같은 폴리에스테르 계열이지만 무게나 직조 방식, 기능 면에서 지금과 큰 차이가 났다.

아디다스코리아에서 제품 기획을 담당하는 최신철 차장은 “10여 년 사이에 축구복의 무게가 절반 정도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아디다스는 2015년 ‘630g 키트’를 출시할 예정이다. 여기서 축구화 한켤레를 제외한 유니폼과 양말, 정강이 보호대가 차지하는 무게는 약 430g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의 축구 유니폼은 몸에 밀착되는 형태가 많다. 이런 ‘쫄쫄이’ 유니폼은 몸싸움할 때 상대방이 옷을 잡아당길 소지를 줄여 주며, 몸에 달라붙기 때문에 땀과 같은 수분 배출에 유리하다. 근육을 잡아줘 불필요한 에너지 손실과 피로물질 생성을 줄여 주는 효과도 있다. 오늘날의 축구 유니폼은 땀 배출이 잘되는 메시 사용이 늘었다. 또 처음부터 축구 선수의 근육 운동을 분석해 만들어 다른 종목의 유니폼과는 재단 과정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99g 기적의 축구화

630g 키트에서 또 한 가지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축구화 한 짝의 무게가 99g이라는 점이다. 원래 축구화 한 짝은 300g 정도까지 무게가 나갔다. 신발의 경량화는 선수들의 발에 ‘날개’를 달아 주는 역할을 한다.

예전의 프로축구 선수들은 캥거루 가죽으로 만든 축구화를 선호했다. 캥거루 가죽은 가볍고도 질기며, 늘어나는 정도가 사람의 피부와 비슷하다. 따라서 발에 꼭 달라붙어 경기력을 높여 줬다. 하지만 호주 정부의 규제가 점차 강화되면서 최근에는 인조가죽이 주류가 되고 있다. 최신 기술을 적용한 인조가죽은 탄력을 유지하면서도 땀 등의 수분을 흡수해 빨리 날려 버리는 기능성까지 갖추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스포츠 브랜드가 특정 선수와 후원계약을 할 때 신발 지원 수량이 중요한 이슈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보통 프로선수들은 구단 스폰서의 유니폼을 입지만 신발은 자신을 개인적으로 후원해 주는 업체의 것을 신는다. 정성룡 구자철 손흥민 박종우 등 아디다스가 후원 중인 한국 선수들을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선수는 계약할 때 다른 부분을 줄이고 물품 지원을 늘려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하프타임마다 축구화를 갈아 신기 때문이다. 축구화 교체 주기는 선수에 따라 매우 다르다. 1년에 서너 켤레만 소비하는 선수도 있다고 한다.

한편 지난달 말 영국 런던에서 열린 ‘아디다스 랩’ 이벤트에서는 630g 키트 이외에도 ‘스마트 볼’이란 놀라운 제품이 선보였다. 스마트 볼은 공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센서를 내장하고 있다. 이 공은 선수에게 볼 컨트롤에 대한 직접적인 피드백을 제공하고 관련 기록을 저장할 수도 있다.

스포츠는 선수뿐 아니라 관련 장비와 용품을 만드는 장인과도 함께 발전한다. 스포츠 장인의 꿈은 21세기의 첨단 과학과 만나 앞으로 더욱 화려하게 피어날 것이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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