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맏사위가 이끄는 장인-장모 봉양계도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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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유교문화박물관 ‘선인들의 모임, 계와 계회도’ 전시회

1654년 영남 출신의 재경 관리 26명이 서울 삼청동에 모여 연회하는 모습을 그린 계회도 ‘보첩’의 일부. 계회도는 카메라가 없던 시절 계 모임 장면을 생생하게 기념하는 장치로, 계원 수만큼 제작해 각자 나눠 가졌다. 광산 김씨 설월당 종택 소장
1654년 영남 출신의 재경 관리 26명이 서울 삼청동에 모여 연회하는 모습을 그린 계회도 ‘보첩’의 일부. 계회도는 카메라가 없던 시절 계 모임 장면을 생생하게 기념하는 장치로, 계원 수만큼 제작해 각자 나눠 가졌다. 광산 김씨 설월당 종택 소장
경북 안동에는 500년 넘게 이어져 온 계(契) 모임이 있다. 1478년 안동의 선비 13명이 함께 고향에서 자연을 즐기고 인격을 수양하기 위해 만든 우향계(友鄕契)다. 우향계는 1903년 중단됐다가 1950년대 후반 부활했다.

현재 계원은 창립자 13명의 후손 100여 명. 이들은 매년 3월 안동의 계회 전용 공간인 우향각에서 계 모임을 한다. 창립자 13명을 모신 사당인 우향사에서 제사도 지낸다. 결성 당시 계원들의 명단과 학자 서거정이 직접 짓고 쓴 시를 실은 족자인 ‘우향계축(契軸)’은 보물로 지정됐다.

계 모임을 통해 친목을 다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서로 돕던 조상들의 미덕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다음 달 3일부터 8월 25일까지 경북 안동시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만날수록 정은 깊어지고: 선인들의 모임, 계와 계회도’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향계축을 비롯한 계회도 60여 점을 선보인다. 계회도란 계 모임 장면을 그린 그림과 참석자들의 신상을 기록한 것으로, 족자 형태인 계축과 책자 형식의 계첩이 있다. 참석자 모두가 나눠 갖는 계회도는 카메라가 없던 시절 소중한 만남을 기념하는 장치였다.

계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계의 종류가 무척 많아져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조사에 따르면 480여 종이나 됐다. 대표적 유형이 친족 간에 길흉사가 생기면 상부상조하는 족계(族契), 선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조직한 학계(學契), 관직 생활을 함께하는 관리들의 모임인 관계(官契), 친목을 다지는 친목계다.

관계에서 행하던 신참례라는 의식은 요즘의 신입사원 환영회를 연상시킨다. 신참례는 신임 관원이 반드시 거치는 신고식이었다. 신임 관원은 잔치 준비는 물론이고 신참례에 참석한 사람 수만큼 계회도를 제작해야 했다. 김순석 유교문화박물관 수석연구위원은 “신참례 비용을 신참들이 냈는데, 그 부담이 커 조정에서 이를 금지해 17세기부터 점점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같은 관청에 소속된 관료들이 참여한 계회, 문과나 사마시(생원과 진사를 뽑는 작은 규모의 과거)에 합격한 동기생들이 조직한 계회,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들끼리 맺은 계회, 서울에서 근무하는 관료 중 같은 지방 출신끼리 모인 계회 등이 평생 지속됐다.

이번 전시에는 1654년 영남 출신의 관리 26명이 서울 삼청동에 모여 연회하는 모습을 그린 ‘보첩’, 1552년생과 1553년생 선비 11명이 1613년 안동 광흥사에서 연 동갑계모임을 그린 ‘임계계회도’ 등이 공개된다.

계원이 모임에 불참하거나 지각할 경우, 유사(有司·지금의 총무 격)가 소임을 게을리할 경우 벌칙이 주어졌다. 닭이나 꿩 한 마리, 청주 한 병 같은 벌금을 내기도 하고, 계원이 소유한 노비를 대신 데려다 곤장을 치는 가혹한 벌칙도 있었다고 한다.

구한말에 이르러 계원들이 출자한 자금을 종잣돈 삼아 대부업을 해서 이익을 나눠 갖는 식리(殖利)계가 투기적으로 변형되면서 도박계가 성행했다. 도박계는 복권처럼 계원들에게 돈을 걷은 뒤 추첨을 해서 당첨자에게 지급하는 것이었다.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만든 위친계(爲親契)와 위빙계(爲氷契·聘의 음만 따서 쉽게 氷으로 씀)도 있었다. 친자녀들이 부모를 위해 모인 것이 위친계, 장인과 장모를 위해 맏사위가 주도하는 것이 위빙계였다. 여기서 거둔 곗돈으로 이자를 불리고 노부모에게 효도관광도 해드렸다.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책임연구원은 “출가외인으로 여겨졌던 딸도 위빙계를 통해 부모 봉양의 책임을 졌다”며 “국민연금 같은 노후보장 제도가 없던 시절 노인을 봉양하고 가정의 화목을 지키려는 지혜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안동#우향계#만날수록 정은 깊어지고: 선인들의 모임#계와 계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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