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을 품은 56m²짜리 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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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 교수의 ‘평당 300만원 집 짓기’
담-대문 없애고 벽-천장에 통유리 창

해질 무렵의 문추헌. 울창한 산을 배경으로 한 노출 콘크리트 집으로 서현 교수가 1년간 35차례 오가며 지었다(왼쪽 사진). 거실 남쪽의 통유리창으로 푸른 산풍경이 가득 들어온다. 좁다란 벽창과 이어진 천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벽돌벽에 인상적인 그림을 그려 놓는다(오른쪽 사진). 서현 교수 제공
해질 무렵의 문추헌. 울창한 산을 배경으로 한 노출 콘크리트 집으로 서현 교수가 1년간 35차례 오가며 지었다(왼쪽 사진). 거실 남쪽의 통유리창으로 푸른 산풍경이 가득 들어온다. 좁다란 벽창과 이어진 천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벽돌벽에 인상적인 그림을 그려 놓는다(오른쪽 사진). 서현 교수 제공
“평당 300만 원에 작은 집 하나 지으려고요.”

요양원에서 일하는 김문숙 씨(58·여·간호사)가 내민 설계도면을 보고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걱정이 됐다. “이런 도면으론 못 지어요. 게다가 평당 300이라니….”

제대로 된 설계도 없이, 그것도 시세의 반값으로 56m²(약 17평)짜리 집을 지으려는 그를 서 교수는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전국은 물론 네팔,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의 요양원을 돌며 아픈 이들을 돌봐온 김 씨였다. “좋은 일 하며 사신 분이 노년을 보낼 곳인데 저도 좋은 일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서 교수의 작은 집 짓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집 한 채에 최소 2000만 원인 설계비는 받을 생각도 없었다. 집주인이 업 대신 덕을 쌓으며 살아온 덕분일까. ‘평당 300’에 집을 지어줄 시공사도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반값 공사비를 감안해 담도 대문도 없이 콘크리트를 치고 벽돌을 붙여 단순한 사각형 집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김 씨가 “벽지를 바르는 게 싫다”고 했다. 그래서 당초 계획을 뒤집어 실내 벽에 벽돌을 붙인 노출 콘크리트 집으로 가기로 했다. 공사 중간에 김 씨는 다시 “하늘이 보이도록 천장에 창을 내달라”고 주문했다. 서 교수는 원 설계를 바꾸어 천창과 동쪽 창문을 ‘ㄱ’자 모양으로 연결해 다시 그렸다. 시공이 까다로운 노출 콘크리트에 천창 뚫기까지 설계가 바뀔 때마다 시공사 사장은 투덜댔지만 결국 집주인이 원하는 대로 집은 완공됐다. 지난해 5월 20일 김 씨와 서 교수가 머리를 맞대고 설계한 지 1년 만이다.

16일 충북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 나지막한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남남동향으로 서 있는 김 씨 집을 찾았다. 문추헌(文秋軒). ‘문숙 씨가 인생의 가을을 보내는 집’이라는 뜻에서 형부가 지어준 당호(堂號)다.

집은 집주인을 닮는다던가. 문추헌은 작은 몸으로 주변 풍경을 넉넉히 안아낸다. 거실 남쪽으로 시원하게 낸 통유리 창 덕분이다. 동쪽 세로로 좁은 창문과 이어진 천창으로는 푸른 근경이 들어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다락을 이고 있는 작은 침실에 앉으면 딱 그 눈높이로 낸 창을 통해 푸른 산을 감상할 수 있다. “아침에 천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저녁 무렵 통유리창 너머 감상하는 노을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김 씨)

문추헌은 서 교수가 설계한 작품 가운데 가장 작은 집이다. 서 교수에게 이날은 공교롭게도 9500채 규모의 서울 송파구 가락동 시영아파트 재건축 배치 계획을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큰 집은 집주인이 가진 것 중 극히 일부를 떼어내 짓기 때문에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집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짓기 때문에 벽돌 한 장 허투루 쓸 수 없어요. 그래서 작은 집엔 집주인의 모든 것이 담기게 되지요. 작은 집 지으면서 저도 얻은 것이 많습니다.”

충주=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집짓기#서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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