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꽃….’ 괴테의 시 ‘들장미’입니다. 어릴 때 배운 하인리히 베르너 작곡 ‘들장미’가 떠오릅니다. 슈베르트가 같은 가사에 곡을 붙인 ‘들장미’도 있습니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우리나라에선 ‘월계꽃’이란 제목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같은 가사에 다른 선율을 붙인 곡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소개한 차이콥스키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도 괴테의 시에 슈만을 비롯한 여러 작곡가가 곡을 붙였지만 유독 차이콥스키의 노래가 사랑을 받습니다.
그런데 짧으면 30분, 길면 두 시간 가까운 대곡이 같은 가사로 쓰여 있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모차르트, 베를리오즈, 베르디를 비롯한 수많은 대작곡가가 같은 가사에 곡을 붙였다면? 가톨릭교회 미사에 사용되도록 작곡된 ‘미사곡’입니다. 미사곡에서 ‘불쌍히 여기소서(Kyrie)’ ‘영광(Gloria)’을 비롯한 다섯 개 라틴어 가사는 반드시 넣도록 되어 있어 작곡가마다 같은 가사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비교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미사곡 중 ‘레퀴엠’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진혼곡’ 또는 ‘장송곡’이죠. 망자에게 애도를 표하며 영원한 안식을 비는 미사곡입니다. 일반 미사곡과는 가사 구성이 다르지만 역시 ‘불쌍히 여기소서’를 비롯한 몇 가지는 공통됩니다.
레퀴엠에 대부분 포함되는 부분으로 최후 심판을 묘사하는 ‘분노의 날(Dies Irae)’이 있습니다. 칼럼 끝부분의 QR코드를 찍어 베르디의 ‘분노의 날’을 들어보시면 익숙하게 느끼실 것입니다. 수많은 TV 프로그램에서 ‘분노’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하는 음악입니다. 모차르트의 ‘분노의 날’도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기억하는 분이 많을 듯합니다. 둘의 차이도 흥미롭습니다. 베르디가 재난에 가까운 ‘분노’를 쏟아놓는다면, 모차르트는 쫓기는 듯한 공포와 초조감을 짙게 전달합니다.
2일 정명훈 지휘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베르디 ‘레퀴엠’에 대한 호평이 많았습니다. 13일에도 최영철 지휘 서울오라토리오합창단·오케스트라가 같은 곳에서 이 곡을 연주했습니다. 호국의 달인 6월에도 전통적으로 ‘레퀴엠’ 연주가 많죠. 다음 달 1, 2일 LG아트센터에서는 필리프 헤레베헤 지휘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합창단이 모차르트의 유작 ‘레퀴엠’을 선보입니다. 다음 달 7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빈프리트 톨이 지휘하는 대전시립합창단·교향악단이 ‘프랑스인의 따스한 레퀴엠’으로 불리는 포레의 ‘레퀴엠’을 연주합니다. blog.daum.net/classicgam/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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