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높은, 더 넓은 눈으로… 렌즈에 봉인된 201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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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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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이득영 사진전’

# 그날 아침
: 헬리콥터를 타고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를 촬영했다.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헬기 하단에 수직촬영 디지털카메라를 장착한 뒤 모니터로 피사체를 확인하면서 케이블에 연결된 셔터를 작동했다. 절정을 이룬 가을 단풍에선 화려한 물감으로 칠한 표현주의적 회화가, 직선과 곡선으로 구성된 놀이동산 사진에선 기하학적 추상회화가 떠오른다.

# 그날 저녁: 배를 타고 서울 잠실에서 행주대교까지 48km의 물길을 따라 한강의 남과 북을 촬영했다. 4초마다 셔터를 누르면서 때론 환하게 불 밝힌 아파트 숲을, 때론 불빛을 보기 힘든 선유도 공원을 스쳐갔다. W자 형태의 강을 따라 남산 서울타워가 다른 각도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에 밀봉된 ‘그날’은 2012년 10월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득영 사진전: 공원, 한강’은 같은 날 하늘과 강에서 바라본 공간과 시간을 고스란히 담은 타임캡슐의 봉인을 푸는 자리다. 더 높은 곳에서, 보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 풍경은 우리가 평소 보지 못한 관점을 제시하기에 익숙한 듯 새롭다.

치과의사와 사진가 활동을 병행하는 이득영 씨(49·사진)는 중립적 시선과 긴 호흡으로 서울의 모습을 수집하고 재배열하는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전시는 미술관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개인전이자 한국 시각문화에 관한 기초적 이미지를 수집하는 ‘일민시각문화’의 일곱 번째 프로젝트로 선보였다. 4월 28일까지. 1000∼2000원. 02-2020-2050

○ 도시를 읽는 새로운 시각

사진작가 이득영이 배를 타고 한강의 밤을 촬영한 작품. 일민미술관 제공
사진작가 이득영이 배를 타고 한강의 밤을 촬영한 작품. 일민미술관 제공
압축성장의 아이콘으로 서울을 주목해온 작가는 도시의 시각적 특성을 드러내는 작업에 주력했다. 사물을 표피적으로 기록하는 그의 작업은 26개 주유소와 34개 주차장 연작을 발표한 미국 작가 에드 루샤의 개념과 언어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는 “사진 전공자도 아니고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이라 본능에 이끌려 정신없이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의 69개 간이매점을 똑같은 형식으로 찍은 ‘한강 프로젝트1’을 전시와 책으로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이후 간이매점은 ‘한강르네상스’에 밀려 죄다 사라졌다). 이어 헬기에서 내려다본 한강 다리 25개를 촬영한 ‘한강 프로젝트2’, 강남 테헤란로 일대를 하늘에서 조감한 ‘테헤란’이 나왔다.

2010년 김포에서 잠실까지 배를 타고 한강에서 촬영한 강남북 풍경을 ‘두 얼굴’ 연작으로 발표했고 지난해엔 밤 버전을 완성했다. 약 1만 장의 디지털 이미지를 합성한 144m 길이의 파노라마 사진이 2층 전시장을 온전히 채운 모습이 장관이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아래위로 대칭을 이룬 강남북 풍경을 비교해보는 것은 낯선 시·공간에 온 듯한 재미를 준다.

○ 풍경을 기록하는 새로운 관점

사진작가 이득영은 헬기를 타고 경기 용인의 에버랜드를 촬영한 ‘공원’ 연작을 선보였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원이 인공낙원인지 사유하는 작업이다. 일민미술관 제공
사진작가 이득영은 헬기를 타고 경기 용인의 에버랜드를 촬영한 ‘공원’ 연작을 선보였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원이 인공낙원인지 사유하는 작업이다. 일민미술관 제공
1층의 ‘공원’ 연작은 이번에 처음 공개된 작업이다. 시대적 상황과 욕망의 소산으로 공원을 해석한 작업으로 풍경을 스캔하듯 기록하는 그의 장기가 살아있다.

비행에 대해 엄격한 규정이 있는 만큼 헬기를 띄워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방부 기무사 등에서 허가를 받고 시간당 180만 원이란 헬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구글 어스를 통해 촬영 대상의 좌표값을 계산하고 날씨처럼 예측할 수 없는 변수도 감안해야 한다. 그는 “항상 치밀한 계획이 필요한 만큼 내 작업은 거의 머릿속에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여러 제약에도 그는 몸으로 탐험하는 작업을 계속할 작정이다. 개별적으로는 무덤덤한 정보의 파편처럼 보이는데 이들을 집적하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업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작가는 “내 목표는 예술가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작업을 즐기면서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에버랜드#한강#이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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