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풀만 먹고 사는게 과연 해결책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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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의 배신/리어 키스 지음·김희정 옮김/440쪽·1만5000원·부키

너무너무 반갑다.

솔직해지자. 요즘 주위에 은근히 채식주의자가 많다. 그들과 겸상하면 식도락(樂)은 식도애(哀)가 되곤 했다. 당위성마저 밥상에 오르면 더 골치 아프다. ‘생명의 존엄’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 그런데 채식에 문제가 있다니. 앗싸, 대놓고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첫 장을 넘기자마자 저자는 진짜 ‘배신’을 때린다. 물론 이 책, 채식의 문제점을 샅샅이 지적한다. 그렇다고 결코 육식을 옹호하진 않는단 소리다.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혀의 현혹에 사로잡힌 평범한 우리네는 맨 하바리이다. 어쩌란 거야, 젠장. 지지 철회.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저자는 뭐하는 사람인가. 환경운동가니 페미니스트니 거창한 이력은 관심 없다. 16세부터 20년 넘게 ‘비건(vegan)’으로 살아왔단다. 비건은 우유 같은 동물성 식품조차 거부하는 극단적 채식주의자. 농사도 직접 지어 자급자족을 실천했다. 근데 2009년쯤부터 다시 고기를 먹었다. 왜? 채식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채식의 배신’이 혁파하려는 채식주의의 함정은 무엇인가.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가장 먼저 도덕적 맹점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채식엔 다른 생물을 귀하게 여기는 정신이 깔려 있다. 여기에 저자는 ‘돌직구’를 날린다. 그럼 당신네가 선호하는 곡물을 키우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는지 아는가. 옥수수가 영글려면 동물의 뼈와 살과 분뇨가 필요하다. 질소와 무기질, 인은 경작에 필수 요소니까. 대안이 없냐고? 화학비료는 더 무수한 생명을 앗아간다. 특히 쌀과 밀 같은 주요 농작물은 대부분 일년초로 해마다 땅을 갈아엎는다. 저자가 “농업이야말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종 청소’ 수준의 범죄”라고 말하는 이유다.

정치적 근거도 희박하다. 채식주의자들은 고기를 얻으려 낭비되는 에너지와 비용을 비난한다. 세계의 기아를 해결하려면 곡식 위주로 식단을 바꿔야 하노라 목청 높인다. 그러나 저자가 볼 때 곡물은 ‘줄기에 달린 화석연료’와 다름없다. 대형화 기계화된 농업에 엄청난 석유와 천연가스가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영양학적으로 채식이 우월하단 것도 환상이다. 저자는 채식으로 퇴행성 관절 질환과 저혈당증, 우울증을 얻었다. 거짓말 같다고? 채식주의자들이 만병통치약처럼 받드는 콩을 보자. 책에 따르면 프랑스는 분유에 콩의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넣지 말라고 명령했다. 갑상샘 기능을 저해하는 탓이다. 이스라엘 보건부는 콩이 유방암 발생률을 높인다고 경고했다.

저자의 공격은 신랄하지만 설득력 높다. 20여 년 동안 자신이 그렇게 살아봤기 때문이다. 영양적 불균형을 몸으로 겪었고, 스스로 밭을 일구며 농업의 폐해를 목도했다. 저자라고 긴 세월 믿어 의심치 않던 채식의 권능을 저버리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을수록 절망적이었단다. 그런 이가 하는 말이니 구구절절 와 닿는다.

다만 너무 주장이 앞서가는 분위기는 아쉽다. 인구가 넘치니 아이를 갖지 말자거나 차를 더이상 몰지 말자는 결론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좀 차분하게 학술적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같은 말도 강요로 느껴지면 거부감부터 생기는 게 인지상정. 살살 꼬드기는 묘미가 있었더라면. 하긴, 배신당하고 냉정하기가 어디 쉬울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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