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로… 가요평론가로… 가수로 종횡무진, 장유정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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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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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는 서민문화 이해의 열쇠”

대중가요를 연구하는 교수가 된 뒤에도 장유정 단국대 교수의 마음속에는 가수에 대한 미련이 꿈틀댔다. 가끔 노래방에라도 가서 풀어주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나중에 눈을 못 감고 죽을까 봐 지난해 자비를 들여 디지털싱글을 발표했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천안=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대중가요를 연구하는 교수가 된 뒤에도 장유정 단국대 교수의 마음속에는 가수에 대한 미련이 꿈틀댔다. 가끔 노래방에라도 가서 풀어주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나중에 눈을 못 감고 죽을까 봐 지난해 자비를 들여 디지털싱글을 발표했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천안=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 고교 시절 교실에서 선생님과 급우들의 신청곡으로 시월의 마지막 날엔 ‘잊혀진 계절’을, 비 오는 날이면 ‘비처럼 음악처럼’을 불러주던 노래꾼, 대학가요제 예선 탈락의 쓴맛을 본 가수지망생, 출산할 때 분만실에 워크맨을 들고 들어간 여자, ‘일제강점기 한국 대중가요 연구’ 논문으로 서울대 박사가 된 국문학도, 대학교수, 가요평론가, 음악치료에 필요한 임상음악전문가 준2급 자격증 소지자, 그리고 나이 마흔에 디지털싱글을 발표한 신인가수…. 》

장유정 단국대 교양학부 교수(41)의 인생은 가요 그 자체다. 그는 국내에 드문 대중가요 연구자다. 케이팝(K-pop)이 세계를 휩쓸지만 그 뿌리인 우리 대중가요의 역사에 대한 실증적 연구는 미미하고 아직 학계에서 새로운 학문으로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대중가요에 대한 애정 하나로 연구를 개척해온 장 교수가 지난 10년간 써온 광복 이전 대중가요 관련 논문 20편을 모아 학술서 ‘근대 대중가요의 지속과 변모’ ‘근대 대중가요의 매체와 문화’(소명출판)를 출간했다. ‘왜색’이라는 우리 근대 대중가요에 대한 편견을 실증적으로 극복하고 매체, 산업, 도시, 연예인이라는 핵심어를 중심으로 당시 대중가요의 구체적 양상을 연구한 성과다.

14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단국대 천안캠퍼스 장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연구실 한편에 놓인 건반이 눈에 띄었다. “힘들 때마다 가요로부터 위로받았고 저 역시 남들을 노래로 위로해주고 싶어 가수를 꿈꿨어요. 하지만 가요 판에 들어간다는 게 열정만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대신 학자의 길을 택했죠.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니 대학원에 가서 구비문학을 공부해 자연스럽게 대중가요 연구로 넘어가기로 했어요.” 근대 대중가요를 모르고서는 오늘날의 대중가요를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해 옛 음반, 음원, 신문, 잡지 등을 뒤지며 숨겨진 대중가요사의 퍼즐을 맞춰갔다.

장 교수는 “대중가요는 현대판 민요 판소리 설화”라며 “옛날 서민들의 생활 의식 문화를 찾기 위해 민요 판소리 설화를 연구하듯 오늘날 대중가요를 연구해야 대중의 일상과 문화를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요는 점차 민요에서 트로트로 바뀌었고, 아이돌 가수의 노래에선 청소년의 생각과 소통 방식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지난해 스튜디오에서 데뷔 음원을 녹음 중인 장유정 교수. 장유정 교수 제공
지난해 스튜디오에서 데뷔 음원을 녹음 중인 장유정 교수. 장유정 교수 제공
근대 대중가요에는 실화가 가사로 쓰이기도 했다. 한번은 장 교수가 유성기 음반의 가사집에서 유도순이 작사하고 채규엽이 노래한 ‘봉자의 노래’ 가사를 읽고 호기심이 생겼다. ‘살아서 당신 아내 못 될 것이면 죽어서 당신 아내 되여지리다…. 내 사랑 한강물에 두고 가오니 천만 년 한강물에 흘러 살리다’라는 가사였다. “1930년대 동아일보 기사를 찾아보니 이 노래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것이더라고요. 유부남을 사랑한 카페 여급 김봉자가 한강에 투신자살한 사건이었어요. 이처럼 가요를 통해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죠.”

장 교수는 지난해 ‘근대가요 다시 부르기’라는 제목으로 디지털싱글 5곡을 발표하면서 꿈에 그리던 가수로 데뷔했다. 황금심의 ‘외로운 가로등’, 무용가 최승희의 ‘이태리의 정원’, 이난영의 ‘다방의 푸른 꿈’, 임원의 ‘리라꽃은 피건만’, 박향림의 ‘희망의 블루스’를 리메이크해 불렀다. 1930년대 곡들을 리메이크한 데 대해 그는 “원곡을 복원, 기록한다는 학술적 가치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리라꽃은 피건만’을 부른 가수 임원이 작곡가 손목인과 동일인임을 밝혀냈고, 사라졌던 ‘외로운 가로등’의 3절 가사를 찾아냈다.

장 교수는 작사가이자 시인이었던 조명암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출간될 전집 3권의 집필에 참여했다. 또 앞으로 황금심 평전, 댄스음악의 계보학, 대중음악 연구방법론, 가요평론집 등을 쓸 계획이다. 손수 작사 작곡 노래한 곡들로 음반을 내는 꿈도 꾸고 있다. “평소 파워풀한 록발라드를 즐겨 부릅니다. 데뷔곡들은 잔잔해서 저의 주특기인 고음역대와 샤우팅 창법을 발휘하지 못했으니 목소리가 늙기 전에 도전할 거예요. 가요 중에 제가 음역을 못 따라가는 곡이 없거든요. 하하.”

천안=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장유정 단국대 교수#대중가요#서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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