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습도조절-공기정화… 흙으로 만든 집은 스스로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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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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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집 짓기 전문가 제주 목수 김서중씨

15년 전 아이들을 위해 만든 귀틀집(통나무를 井자 모양으로 쌓아올려 만든 집)이 시작이었다. 현장에 나가 내 손으로 지어놓은 집을 바라볼 때마다 신기했다. 차곡차곡 쌓인 나무는 마치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듯했다. ‘나도 이렇게 잘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2평(약 39m²)짜리 집을 짓는 데 열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나무를 만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는 한국통나무학교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생태건축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뭔가를 만지고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는 제주 목수 김서중 씨(46·사진). 그는 20채가 넘는 흙집과 통나무집을 자기 손으로 지은 베테랑 목수면서도 “난 목수로 치면 100등 안에도 못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겸손해했다. 그는 “현장에서 열심히 보고 들으면 누구나 반(半)목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지은 집이 대개 10∼20평(33∼66m²)의 작은 집이다.
“어릴 때 초가집에 살았다. 세 명의 동생과 겨울에 서로 이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실랑이를 하다 잠들곤 했다. 가족들이 그렇게 부대끼며 사는 게 좋았다. 일종의 형제애랄까. 집이 작을수록 가족 간의 사랑도 더욱 돈독해진다고 생각했다. 생태건축가들은 ‘한 사람이 사는 데는 5평(약 16m²)이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5평이면 크지도, 작지도 않다. 물론 목수 입장에서야 면적이 커지면 돈을 많이 받겠지만 건축주 입장에서 봤을 때는 낭비다.”

좋은 집의 조건은 뭘까.
“튼튼해야 한다. 그래야 건물의 수명이 길어진다. 또 건강한 집이어야 한다. 집이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내가 만든 유해물질도 해독해 줘야 한다. 또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야 한다. 그에 맞는 재료를 선택한 집이 좋다. 산에서는 귀틀집이 좋지만 바닷가에서는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석회벽이 좋은 것처럼.”

제주시 애월읍에 지어진 흙집 라이트코브하우스. 제주=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제주시 애월읍에 지어진 흙집 라이트코브하우스. 제주=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흙집의 매력은 뭔가.
“흙집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최적의 집이다. 특히 온 가족이 함께 살기에 좋다. 일단 통나무집과 달리 단열이 좋다. 게다가 흙집은 실내공기를 정화해 준다. 실내습도가 자동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건조한 공기 때문에 고생할 일이 없다. 어떤 분은 ‘흙집에 있으면 마치 집이 숨쉬는 듯하다’고 하더라.”

흙집도 약점은 있을 것 같다.
“미장을 잘못하면 집 안에 흙가루가 날릴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흙먼지가 바닥에 쌓이기 때문에 매일 닦아야 할 수도 있다. 제대로 된 공법으로 시공하지 않으면 벌레가 나오기도 한다. 심하면 먼지만큼 작은 해충인 먼지응애가 몇 년 동안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특수 공법을 써서 흙집을 짓는다.”

한옥도 황토를 발라 만든 흙집의 일종인데….
“한옥은 몇 가지 단점만 개선하면 현존하는 최고의 목구조 건물이 된다고 본다. 환기, 통풍, 채광을 모두 고려한 과학적인 건물이다. 버선코처럼 올라간 처마의 끝선이 과학적 설계의 결정판이다. 겨울철에도 햇볕이 집 안쪽까지 들어오도록 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옥이 가진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옥의 문제점 중 하나가 단열 기능의 부족이다. 이는 가는 통나무 때문에 흙벽을 충분히 두껍게 쌓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여기에 서양식 미장 방법을 응용하거나 하면 해결이 가능하다. 나중에 한옥의 새바람이 불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집을 지으려면 건축주도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최소의 비용으로 좋은 집을 짓고 싶다면 건축주도 공부를 해야 한다. 목수가 시시콜콜한 것까지 건축주에게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알아서 잘해 주세요’라고 말했던 건축주도 공사가 진행되면서 주위에 ‘사공’이 많아지면 혼란스러워한다. 제3자가 던진 훈수에 혹해서 목수와의 신뢰가 흔들리기도 한다.”

김 씨는 내년부터 건축을 취미로만 즐길 생각이라고 한다. 집을 지으며 건축주와 겪는 사소한 마찰이 그의 심신을 지치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주야말로 목수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건축주와 시공자가 손발이 맞아야 모두가 만족하는 좋은 집이 나오기 때문이다.

제주=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O2#흙집#김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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