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하지만 참 따뜻한 ‘밥퍼’

  • Array
  • 입력 2012년 12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창작뮤지컬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 세밑 감동

‘밥퍼 목사’로 유명한 최일도 목사 부부의 사연을 극화한 서울시뮤지컬단의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 서울시뮤지컬단 제공
‘밥퍼 목사’로 유명한 최일도 목사 부부의 사연을 극화한 서울시뮤지컬단의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 서울시뮤지컬단 제공
연말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훈훈한 감동을 주는 창작뮤지컬이 나왔다. 서울시뮤지컬단의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이다윗 작·황규동 작곡·김덕남 연출)이다. 청량리에서 최저생계도 해결 못하는 도시 빈민에게 무료급식 봉사 활동에 매진해온 최일도 목사 부부의 사연을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국내 창작뮤지컬로는 드물게 생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국내 뮤지컬 대다수가 작고한 인물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경우가 많기에 논란의 소지가 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최일도 목사 부부의 헌신적 삶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우리가 어렵잖게 만날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불우이웃을 배려하는 연말연시 분위기에 딱이다.

1막은 개신교 전도사였던 최일도와 천주교 수녀였던 김연수 부부의 파격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에 양념으로 최일도 목사의 친구였던 요절한 싱어송라이터 가수 김현식의 노래를 삽입해 통념을 뛰어넘는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을 극화했다. 젊은 관객들에게 매력 있게 다가설 내용이다.

2막은 결혼 후 신학교를 다니던 최일도가 88서울올림픽 전후로 청량리로 몰려든 도시 빈민들의 절박한 삶에 눈을 뜨고 사창가였던 청량리 588 앞에 다일공동체를 세우고 무료 급식에 나서게 된 사연을 담았다. 예수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으로 표현했던 거지와 창녀의 삶 한복판에 뛰어들어 돈키호테처럼 좌충우돌하다가 좌절 끝에 스스로 구원을 얻는 최일도 목사 부부의 사연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객관적으로 완성도가 뛰어나진 않다. 음악은 장면 장면에 충실하긴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귓가에 맴도는 멜로디는 없다. 1막에서 표현된 남녀 간 사랑이 2막에서 타자에 대한 보편적 사랑으로 확산되는 극적 연결고리도 약하다. 즉, 에로스적 사랑이 아가페적 사랑으로 발효되는 과정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가 부족하다.

그 대신 이 작품은 투박하지만 진정성 넘치는 실화의 힘으로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힘을 지녔다. 최일도(임현수) 김연수(홍은주) 부부의 안정적 가창력과 연기력은 확실히 전체 작품의 무게중심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깔아놓은 주단을 밟고 빛을 발하는 것은 ‘거장’(거지대장의 애칭·원유석)과 창녀 향숙(유미) 그리고 붕괴 위기에 처한 다일공동체의 존재 의의를 일깨워주는 고물상 노인(곽은태)이다.

암전 상황에서 무대세트를 배우들이 직접 밀거나 흔들어대는 아날로그식 무대언어 역시 처음엔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30명에 이르는 출연진의 땀이 빚어내는 앙상블이 제법 감동적이다. 588 집창촌에 대한 리얼한 묘사 때문에 중학생 미만 자녀를 둔 가족공연으로선 한계도 존재하지만 ‘웰 메이드 뮤지컬’들이 담아내지 못하는 진한 감동이 있다.

: : i : :

최일도 역으로 박봉진 씨가 번갈아 출연한다. 29일까지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만∼12만 원. 02-399-1114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뮤지컬#밥퍼#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