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추억하다… 역사를 호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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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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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불러오는 두 전시 ‘2012 서울사진축제’&‘대한제국 황실의 초상’
개발시대 서울의 여정 한눈에… 시민-작가의 사진 격의없이 어울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가 아니다. 1978년 서울 압구정동에는 소 몰고 밭가는 농부가 있었다(사진가 전민조). 1960년대 말 뚝섬에선 돛단배들이 한가롭게 떠다녔다(홍순태). ‘천 개의 마을, 천 개의 기억’을 주제로 열리는 2012서울사진축제는 마을 공동체의 시선에서 서울을 추억하는 자리다. 전시장에선 서울시 옛 사진 공모를 통해 수집된 일반 시민의 사진과 사진가의 작품이 격의 없이 어울린다. 평범한 앨범사진들이 한데 모이면 지역과 생활사 연구의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청사 서울역사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과 한미사진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 1880∼1989’전은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역사를 호명하는 자리다. 근·현대기 원본 사진 자료 200여 점 속에 황실의 주요 무대인 서울, 그리고 궁궐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대한제국의 탄생, 조선 왕조의 몰락, 한국 사진의 여명기를 찬찬히 짚은 전시는 알찬 내용과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그 어떤 역사책보다 생생하고 핍진한 삶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사진전이다. 내년 1월 13일까지 덕수궁미술관.

사진 아카이브의 가치를 재조명한 이들 전시에 근대 사진의 선구자 지운영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각기 어떤 시각으로 접근했는지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 서울―공동체의 기억을 찾아서


서울 변천사를 살펴보는 서울사진축제에 선보인 사진가 황헌만의 ‘난지도의 원두막’(1970년대). 서울사진축제 제공
서울 변천사를 살펴보는 서울사진축제에 선보인 사진가 황헌만의 ‘난지도의 원두막’(1970년대). 서울사진축제 제공
‘우리가 기억을 소홀히 한다 해도 그 기억은 결코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알라이다 아스만). 공동체의 기억을 재구성한 서울사진축제는 서울 토박이 등 시민들 사진을 수집해 개인의 일상과 공적 역사의 통합을 시도했다. 작은 사진들을 밋밋하게 나열해 집중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으나 남의 내밀한 사진임에도 비슷한 시기를 거친 관객에겐 자기 앨범을 들쳐 보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그때, 거기에 있었습니까’ 코너는 4·19혁명부터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1970년, 유신헌법을 공포한 1972년 등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해에 찍은 시민의 사진을 소개해 공적 역사의 빈 구석을 보완한다.

사진가들의 작품은 성장과 발전을 위해 서울이 선택한 여정을 돌아보게 한다. 임인식의 가회동, 전몽각의 숭인동, 황헌만의 난지도, 김기찬의 서울 골목길 등은 ‘기억의 고고학’을 파고든다. 이념적 지향성을 드러낸 사진프로젝트보다 재개발 현장을 담담하게 접근한 강홍구, 하늘에서 바라본 강남을 소개한 이득영, 청계천 철거 현장을 기록한 안세권의 작업이 오래 생각할 여지를 남겨준다.

○ 황실―삶의 기억을 찾아서


우리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황실 대한제국과 운명을 함께한 사람들의 여정은 고달프고 기구했다. 고종과 귀인 장씨의 아들 의친왕이 남긴 형제의 삶도 그랬다. 일본으로 귀화한 뒤 1990년 82세의 나이로 별세한 장남 이건, 황족과의 결혼을 거부하고 박영효의 서손녀 박찬주와 혼인한 뒤 1945년 히로시마 피폭으로 34세에 타계한 차남 이우. 그들의 삶과 더불어 영친왕 덕혜옹주 등의 삶은 전시에서 오롯이 되살아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굴곡진 역사를 배경으로 황실 인물의 공적, 사적 여정을 따라가는 사진들이 그들이 울고 웃던 덕수궁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도 울림을 증폭시킨다. 각 인물의 삶이 워낙 극적인지라 흐릿한 사진들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영상 모니터 앞에 서면 장편영화를 보는 듯 발을 떼기 힘들다. 사진 사진첩 사진엽서 인쇄간행물 등 온갖 시각 이미지를 망라한 전시는 인물과 역사적 장소뿐 아니라 건축공간과 의복의 변화 등 인문적 교양을 넓히는 데도 도움을 준다.

전시를 보고 나면 도록의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전시는) 비극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이씨왕조의 가계에 보내는 진심 어린 조사(弔詞)이다. 그리고 비극의 역사도 혹은 치욕의 역사도 대한민국 과거로 소중히 거둬들이는 성숙한 역사의식의 도래를 희망하는 기원문이기도 하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서울#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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