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꽃과의 대화]야생화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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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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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란의 꽃.
제주 한란의 꽃.
아름답거나 희소한 것은 사람들에게 갖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운 꽃도 예외가 아니다. 누구나 예쁜 꽃을 보면 오로지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욕망이란 절제되어야 한다는 게 사회적 합의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간혹 생기는데, 당연히 주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한란 자생지가 복원되고 있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동아일보 11월 15일자 A16면 참조). 한라산 남쪽 자락 서귀포에 보금자리를 튼 한란들이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꽃을 피우고 있단다. 한란은 1967년 천연기념물 제191호로 지정될 정도로 국가 차원에서 소중하게 보호되고 관리돼 왔다. 하지만 자생지에서는 계속 개체 수가 감소했다.

현재 많은 사람이 제주 한란이나 그 변이종을 집에서 감상하고 있다. 물론 오래전 채집한 개체를 번식시켜(촉을 나누어) 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한란의 재배가 자생 개체 수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수요는 결국 공급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원예를 하는 사람이 진정 자연을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많은 꽃집에서 돌이나 숯에 붙여 파는 풍란도 사실은 환경부가 한란과 함께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한 식물이다. 풍란 역시 자연 상태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올해 10월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전남 어느 섬의 바위에 붙어 자라는 개체들을 발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란이 자연 상태에선 멸종위기에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화원에 풍란이 많은 것은 조직배양을 통해 대량 증식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흔히들 야생화는 우리나라에 원래 자생하는 식물이기 때문에 집에서도 쉽게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엄청난 오해다. 구절초나 금불초같이 전국 야산에 자생하는 일부 야생화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많은 야생화는 고산지대라든가 습지, 북향의 나무숲과 같은 한정된 환경에서 진화해 왔다. 따라서 이들이 살기에 적절한 환경은 우리 주변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가령 여름에도 서늘한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 살던 노랑제비꽃을 캐와 푹푹 찌는 화단에 심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연은 자연 상태 그대로일 때 아름다운 법이다. 또 한란이나 풍란의 소중함은 원식물이 자연 상태에 있을 때에야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자연 속에 한란이나 풍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아름다움은 조화(造花)의 아름다움과 다름없을 것이다. 자연에서는 멸종해 버렸고 몇몇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을 생각해 보라. 나는 자연 상태의 한란이나 풍란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수많은 야생화를 산속에서 우연히 발견했을 때의 감흥과 그들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잘 알고 있다.

취미로 꽃식물을 기르는 목적 중 하나는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멀리 있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데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자연은 자연 그대로여야 아름답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사람의 손을 거쳐 사람들이 원하는 크기와 색을 갖게 된 원예식물과 달리, 야생화의 아름다움은 자연 그대로에서 더욱 빛이 나기 때문이다.

자연 그대로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그 애정을 훗날 우리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자연을 그대로 놓아 두는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 스산한 가을의 끝 무렵, 제주의 계곡가에 그윽한 향기를 머금은 한란 꽃이 피어 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흐뭇해진다. 내년에는 활짝 핀 한란 꽃을 자생지에서 보고 싶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서정남 농학박사(농림수산식품부 국립종자원) suhjn@korea.kr
#야생화#한란 자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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