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호 단국대 박물관장 “해체 석가탑서 사리장엄 이상 유물 기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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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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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전 석가탑 유물 수습 참여 유일 생존자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정영호 관장이 경주 능지탑 유물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문화재를 ‘내 것’이라 생각하면 소중히 여기게 되고, 소중히 여기면 문화재는 영원히 보존될 수 있다”며 문화재에 대한 애정을 당부했다. 용인=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정영호 관장이 경주 능지탑 유물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문화재를 ‘내 것’이라 생각하면 소중히 여기게 되고, 소중히 여기면 문화재는 영원히 보존될 수 있다”며 문화재에 대한 애정을 당부했다. 용인=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9월 27일 경북 경주시 불국사에서는 석가탑의 전면 해체 복원 작업이 시작됐다. 이를 지켜보던 정영호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장 겸 석좌교수(78)의 눈앞에는 46년 전 가을의 풍경이 겹쳤다.

1966년 9월 석가탑이 훼손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한국미술사학계의 태두인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 진홍섭 전 이화여대 박물관장과 함께 부리나케 경주로 내려가 망가진 석가탑을 구석구석 살피며 망연자실했다. 도굴범들의 소행으로 일부 훼손된 석가탑의 보수를 위해 해체했을 때 2층 탑신부(塔身部)의 사리공(舍利孔)에서 유물 45건 88점을 담은 사리장엄구(舍利裝嚴具·사리를 봉안하는 장치)가 발견됐다. 불행 중 얻은 수확이었다.

1952년 서울대 사범대 역사학과에 입학한 뒤 초대 문화재 전문위원, 단국대와 한국교원대 사학과 교수 및 박물관장 등을 거치며 문화재를 찾아 전국을 발로 뛰어온 그는 지금도 불교미술사의 권위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 60년간 국내에서 복원된 탑은 대부분 그의 조언을 거쳤다.

26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 단국대 박물관에서 만난 정 관장은 46년 전 불국사 주지스님 방에서 사리장엄구를 열어 국보급 유물을 수습하던 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정부터 전깃불을 환히 밝히고 비밀리에 한 작업은 오전 4시 종이 울릴 때까지 이어졌다. 정 관장과 황 전 총장이 핀셋으로 유물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꺼내면 진 전 관장이 수첩에 꼼꼼히 기록했다. 당시 한방에서 작업한 두 스승은 고인이 되었다.

사리장엄구에서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수습하던 순간의 일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서 살이 통통하게 찐 좀 6마리가 나왔어요. 그 귀한 불경을 갉아먹은 겁니다. 핀셋으로 집어서 빈 약병에 넣고 마개를 닫았어요. 질식해 죽으라고. 그런데 채벽암 주지스님이 들어오더니 ‘내 방에서 살생(殺生)일랑 하지 마소’ 하며 밖에 나가 좀들을 풀어줬답니다.”

이번 석가탑 전면 해체 도중 기단부나 지반에서 새로운 유물이 나올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는 데 대해 정 관장은 신중한 의견을 보였다. “유물이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어요. 훼손된 부분이 없다면 뭔가 굉장한 게 나올 거라는 ‘보물찾기’ 식의 생각으로 기단부와 지대석을 파헤쳐선 안 됩니다.” 정 관장은 “탑의 핵심은 부처님을 대신하는 사리장엄이기 때문에 뭔가 발굴된다고 해도 이미 나온 사리장엄만큼 중요할 순 없다”고 말했다.

중원고구려비와 단양신라적성비를 비롯해 수십 점의 국보 및 보물을 발굴해온 정 관장은 가장 애착이 가는 문화재로 강원 양양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진전사(陳田寺) 터를 꼽았다. 그는 1965년 이곳에서 ‘진전사’라고 쓰인 기와를 줍고, 쓰러진 부도(浮屠·보물 제439호)와 석탑(국보 제122호)을 발굴해 복원했다. “진전사는 통일신라 때 당에서 선종을 들여온 승려이자 조계종의 종조(宗祖)인 도의국사가 창건한 절입니다. 조계종의 종찰을 발굴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1977년부터 일본 쓰시마(對馬) 섬(대마도)에서 한국 문화유적을 발굴해온 그는 황 전 총장 및 일본인 전문가들과 함께 쓰시마한국선현현창회를 만들어 면암 최익현 선생, 백제 왕인 박사 등 대마도를 거쳐 간 우리 선현 10명을 기리는 기념비 10개를 세웠다. 2004년 대마도 주민은 한일 교류사 연구와 친선에 애써온 정 관장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성금을 모아 기념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요즘도 매달 한 차례씩 대마도에 간다.

정 관장은 지금도 서울 청량리 자택에서 용인의 박물관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할 정도로 건강하다. 그는 “그동안 국내외를 답사하며 찍은 흑백사진 100만 컷, 컬러 슬라이드 20만 컷을 정리하고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한국미술사연구’라는 제목으로 10권 분량의 저서를 내는 게 목표”라며 밝게 웃었다.

용인=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정영호 단국대 박물관장#석가탑#사리장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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