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장사익 소리판,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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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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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서 반갑고, 좋은 인연 고맙고, 노래하는 삶이 기쁩니다.” 그가 그렇게 얘기한다. 이어서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란 노래를 부른다. 15,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장사익 소리판’에서 첫선을 보인 신곡이다. 자신의 삶을 얘기한 노래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노래는 나의 인생’이란 제목의 이미자 노래가 생각났다. 노래 인생 50년을 기념한 곡으로, 역시 2009년 당시 세종문화회관을 가득 메웠던 청중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 ‘인고’의 이미자, ‘희망’의 장사익

장사익의 트로트에는 ‘꺾기’가 없다. 트로트를 부르되 트로트처럼 부르지 않는다.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장사익 소리판’은 그 특유의 서정으로 가득 찼다. 사진가 김녕만 씨 제공
장사익의 트로트에는 ‘꺾기’가 없다. 트로트를 부르되 트로트처럼 부르지 않는다.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장사익 소리판’은 그 특유의 서정으로 가득 찼다. 사진가 김녕만 씨 제공
이미자와 장사익, 다르고도 비슷하다. 이미자가 소녀 시절부터 가수였다면, 장사익은 장년에 등 떠밀리듯 가수가 됐다. 공연 뒤풀이에서 부르는 그의 절창(絶唱)을 소수만이 좋아하기엔 너무도 아까웠기 때문이다. 이제 장사익의 가수 인생도 20년을 향해 가는 것 같다.

이미자의 노래가 인고(忍苦)라면, 장사익의 노래는 희망(希望)이다. 이미자의 노래에는 가부장제 속에서 참고 참으며 살았던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 담겼다. 웃음소리도 울음소리도 담장을 넘기는 걸 원치 않았던, 그때 그분들의 삶을 노래한다. 절절한 가사를, 담담히 부른다.

장사익의 노래는 디지털 시대를 사는 아날로그 가장의 노래이다! 직장에서나 집안에서나 점차 자신의 자리는 줄어들지만, 그래도 결코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국밥집에서’ 허기를 채운다. 스스로 ‘허허바다’와 던져진 ‘찔레꽃’처럼 미미한 존재임을 인식한다. 그러나 늘 ‘희망 한단’을 움켜쥐고 ‘산 넘어 저쪽’을 향한다. 장사익의 노래는 그대로 지난 50년간 우리네 아버지의 얘기다.

○ 진성과 통성의 서정

장사익의 소리판에선 대개 1부는 시를 소재로 해서, 시인의 마음이 되어 노래로 풀어낸다. 2부에선 가요의 명곡을 장사익 스타일로 풀어낸다. 이번에도 그랬다. 장사익이 세종문화회관을 가득 채운 청중에게 얘기한다. 자신은 소년기에 ‘김소월과 김영랑이 모두 여자’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장사익은 그들의 서정적인 시어를 오히려 남성적인 힘이 넘치는 노래로 거듭나게 했다.

예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한국적으로 노래하는 이는 장사익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 “대한민국에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오직 ‘진성’만으로 노래하는 사람은 장사익이다.” 장사익은 가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장사익이 어찌 가성을 쓰면서 기교적으로 노래할 줄 모르겠는가. 음표 속의 장식음을 가능한 한 덜어내고 부르는 게 장사익 최고의 미덕이다.

장사익의 노래는 솔직하다. 가사와 창법에서 불필요한 수식언이 배제되어 있다. 우리네 일상에서 쓰이는 명사, 동사, 형용사를 진솔하게 사용하면서, 장사익 특유의 ‘통성’으로 내지른다. 그러하기에 장사익의 노래는 시원하다. 장사익이 부르는 대중가요 중 ‘대전블루스’가 있다. 이 노래의 반주악기로 대개 색소폰을 등장시킨다. 하지만 장사익의 소리판에는 힘 있게 뻗어가는 트럼펫(최선배 연주)이 존재한다.

○ ‘배제된 꺾기’의 순박함이 주는 감동

이미자와 장사익, 둘은 모두 트로트를 선호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일반적인 트로트 가수의 창법과는 다르다. 한국이나 일본을 막론하고, 트로트 가수는 대개 절절하게 부른다. 이른바 트로트 특유의 ‘꺾기’ 창법을 드러내면서 노래한다. 이미자는 이런 표현법을 속으로 숨기면서 노래한다. 이미자의 트로트가 ‘내재된 꺾기’라고 한다면, 장사익의 트로트는 완전 ‘배제된 꺾기’다. 장사익은 트로트를 부른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트로트 가수처럼 트로트를 부르지 않는다. 장사익이 모든 대중음악 가수와 구별되는 시작점이다.

장사익은 이미자를 좋아한다. ‘동백아가씨’와 ‘열아홉 순정’을 즐겨 부른다. 따져보면 이런 노래의 선택은 매우 어색할 수 있다. 성별은 여성이요, 정서는 순정이다. 그럼에도 장사익은 이런 노래 또한 장사익 스타일로 노래한다. 성별을 남성으로, 정서를 순박함으로 바꾸어서 부른다. 이런 노래의 밑바탕에는 열정과 희망이 채워져 있다.

장사익이 그런 것처럼, 장사익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에게 똑같은 말을 해주어야 할 것 같다. 노래하는 장사익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윤중강 국악평론가
#국악#장사익#소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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