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13>낙동강 하구의 갈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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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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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람이 아니라도 을숙도의 가을을 기억하는 사람이 제법 있을 것입니다. 근대화의 충격을 받으면서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을숙도가 있는 낙동강 하구는 갈대밭이 있어 가을의 정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허훈(許薰·1836∼1907)이라는 경북 선산 출신의 선비가 있었는데 조부가 김해에 서당을 열고 후학을 가르쳐 부친을 따라 김해에 자주 머물렀습니다. 그가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쯤 낙동강 하구에 들러 이러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김해 남쪽 낙동강 하구를 당시에는 남호(南湖), 혹은 남포(南浦)라 불렀습니다. 물가의 개펄에는 게가 기어 나오고 뿌연 물에는 물고기가 튀어 오릅니다. 그 곁은 온통 갈대꽃이 지천입니다. 배에서 잠을 잔 사공이 새벽녘 문 삼아 내려둔 거적을 밀고 나서다, 아직 계절이 이른데 ‘하마’(‘벌써’의 사투리) 무서리가 이렇게 많이 내렸나 어리둥절해합니다.

이보다 앞서 이학규(李學逵)라는 고단한 선비가 있어 긴긴 세월 24년 동안 김해 바닷가에서 귀양살이를 하였습니다. 그 집안에 이승훈(李承薰), 황사영(黃嗣永) 등 천주교 신자가 있어 박해를 받은 것이지요. 그래도 이학규는 그 불행 덕에 낙동강 하구를 아름다운 문학에 담았기에 후세에 이름을 드리웠습니다. 남호는 안개와 물, 그리고 갈대가 일망무제로 뻗어 있는데 가을과 겨울이 교차할 무렵이 되면 물새가 떼를 이루어 새벽까지 울어 대곤 하였습니다. 이학규는 달빛 아래 갈대밭 우거진 강으로 어부가 고기잡이 나가는 풍경을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포구의 갈대꽃 달빛에 어지러운데, 온갖 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 대네. 좋아라, 서리 내리고 벌레 울음 들리자, 모두들 다래끼 들고 남호로 내려가네(蘆花浦上月紛紛 夜r朝嘲百鳥聞 각喜降霜蟲信至 盡提笭 下湖분)”. 을숙도로 가는 차편 대신 이런 시를 바칩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낙동강 하구의 갈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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