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9>가족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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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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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볕이 좋을 때 짬을 내어 가족의 손을 잡고 들길을 걸어보면 어떨까요? 인생살이 무어라고 아등바등 삽니까? 명예와 권력, 부귀와 영화가 대수겠습니까? 17세기 문인인 오숙(吳숙·1592∼1634)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권합니다. 그러면서 가족이 함께 산책하는 즐거움을 말하였습니다.

밥을 먹고 가족이 산책을 나섰습니다. 바쁠 것이 없는지라 느릿느릿 채마밭을 둘러봅니다. 아내는 다소곳이 남편의 뒤를 따르고 아이놈은 즐거워하면서 앞장서서 뛰어갑니다. 병든 아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내가 오래 병석에 있어서 바깥나들이를 하지 못한 듯합니다. 잠시 차도가 있어 바람도 쐴 겸 바깥나들이를 한 것이겠지요. 그러니 어린 자식이 더욱 신이 났을 겁니다. 오숙은 젊은 시절 딸 하나만 있어 조카 오두인(吳斗寅)을 양자로 삼았는데 나중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시가 젊은 시절의 것으로 보이니, 여기에 등장하는 아이는 딸아이인 듯싶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입니다.

18세기 위항(委巷)의 시인 장혼(張混)은 ‘손님에게 답하다(答賓)’라는 짧은 시에서 “담 모퉁이에서 아내는 절구질하고, 나무 아래서 아이는 책을 읽는다. 내 사는 곳 못 찾을까 근심 말게나, 바로 이러한 곳이 나의 집이라네(籬角妻용粟, 樹根兒讀書. 不愁迷處所, 卽此是吾廬)”라 하여 행복한 ‘우리 집’을 자랑한 바 있습니다. 담장 모퉁이에서 아내는 절구질을 하고, 아이는 나무 아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알뜰한 아내는 불평하지 않고 근실하게 가사를 돌봅니다. 이것이 바로 작아서 오히려 큰 인생의 행복이라 하겠습니다. 더 날이 차가워지기 전에 가족들과 함께 바깥나들이를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종묵#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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