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최고의 성악선물 그러나 무대와 연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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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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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올드리치의 ‘카르멘’ ★★★☆

국립오페라단의 ‘카르멘’에서 최고의 성악적 경험을 선사한 케이트 올드리치(카르멘·오른쪽)와 장피에르 퓌를랑(돈 호세).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의 ‘카르멘’에서 최고의 성악적 경험을 선사한 케이트 올드리치(카르멘·오른쪽)와 장피에르 퓌를랑(돈 호세).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 창단 50주년 기념으로 공연된 ‘카르멘’을 케이트 올드리치(카르멘), 장피에르 퓌를랑(돈 호세)의 노래로 들었다면 국내에서 공연된 역대 ‘카르멘’ 중 음악적으로 최고 수준의 현장에 있었던 셈이다. 벨칸토 오페라의 메조소프라노로 이름을 알린 후 카르멘으로도 세계적 호평을 얻고 있는 올드리치는 전형적 집시여인이라 할 순 없었지만 아름다운 음색과 빼어난 음악성이 돋보인 고급스러운 팜파탈이었다. 특히 가사와 노래의 의미가 마디마다 정확하게 맞아들었다.

퓌를랑은 프랑스 테너의 바람직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약음으로 부르는 프랑스어 뉘앙스가 일품이었고 필요한 장면에서는 힘도 충분히 실었다. 돈 호세의 분노와 좌절을 표현하는 연기도 과장스러움을 배제하고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김선정(카르멘)과 정호윤(돈 호세)의 국내 주역 팀도 좋았으나 이 오페라 본연의 뉘앙스라는 측면에서는 수준차가 있었다. 벤자맹 피오니에의 지휘도 빼어났다. 과도하지 않게 템포와 강약을 조율하여 집시와 투우사가 어우러진 스페인의 열정과 프랑스의 고아한 음악을 잘 조화시켰다. 최근 합주력이 향상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역량도 충분히 이끌어냈다.

문제는 무대와 연출이었다. 프랑스 연출가 폴 에밀 푸르니는 연출가 노트에 ‘근본으로 돌아가다’라고 적었다. 오페라의 원작인 메리메의 소설은 복잡한 구성이지만 오페라에 인용된 부분은 화자가 감옥에 갇힌 돈 호세로부터 카르멘을 죽인 자초지종을 듣는 형식이다. 3막 2장의 투우장 외부에 쇠창살이 설치되어 카르멘을 죽인 돈 호세가 그 안에서 울부짖으며 끝맺는 것은 원작의 효과를 살린 것이었다. 세비야의 광장을 묘사하던 원형무대가 회전하여 그 어두운 이면이 2막의 술집으로 바뀌는 것도 1막에서 카르멘의 노래 ‘세기디야’에 묘사된 술집 위치와 부합한다.

그러나 관객이 이 오페라에서 기대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 즉 남국적인 열정은 거의 살리지 못한 무대와 연출이었다. 일률적인 통제를 상징하는 것이겠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된 담배공장 여직공들이 너무나 말끔한 유니폼을 입고, 옷에 어울리지 않게 담배를 피우다가 카르멘이 등장하자 몇 명이 마치 간격을 맞춘 듯 드러누워 무대 쪽을 바라보는 장면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3막은 돈 호세가 종교인이 될 예정이었다는 것에 착안한 듯 성주간(Holy Week)의 상징물을 배치했는데, 산속 장면의 묘사가 불가능한 고정된 회전무대를 변명하기 위한 장치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많은 상징을 담고자 한 연출자의 의도가 과연 관객과 얼마나 소통했을지 의문스럽다. 다만 극중 내내 별 활용도 없던 회전무대가 가수들을 객석에 가깝게 몰아낸 역할을 한 덕분에 노래가 또렷하게 전달된 점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유형종 음악칼럼니스트
#공연 리뷰#오페라#카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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