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멋쟁이들의 ‘명품 강박증’에 지쳐가고 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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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크 백 ‘V°73’ 디자이너 그레코-아르멜린 부부

‘페이크백’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핸드백 브랜드 ‘V˚73’ 백을 만든 엘리사베타 아르멜린 씨(왼쪽)와 스테파노 그레코 씨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페이크백’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핸드백 브랜드 ‘V˚73’ 백을 만든 엘리사베타 아르멜린 씨(왼쪽)와 스테파노 그레코 씨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멀리서 보면 분명히 명품 백인데 가까이 가서 보면 캔버스 천에 명품 그림이나 사진이 프린트된 가방이 있다. 이른바 ‘페이크 백(fake bag)’이다. 올 한 해 서울의 트렌디한 거리마다 페이크 백을 멘 여성들이 늘어나 화제의 중심이 됐다. 경기 침체에 지친 소비자들이 단체로 ‘간장남녀’(합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가 된 것일까.

“경기 불황과 페이크 백 열풍은 관련이 없는 것 같아요. 소비자들이 무겁고 과한 명품에 질리기 시작했다는 시그널인 거죠.”

페이크 백 디자이너 엘리사베타 아르멜린 씨가 말했다. 그녀는 페이크 백 중에서도 위트 있는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장식으로 유명한 ‘V°73’백을 만든 주인공이다. 그녀는 지난달 한국 시장 상황을 보기 위해 남편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남편인 스테파노 그레코 씨는 V°73 가방 등을 총괄하는 에코디자인과 이탈리아 패션 제조업체 이스트웨스트컴퍼니의 최고경영자(CEO)이다.

지난달 9일 오전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3층 ‘힐앤토트’ 매장에서 만난 이탈리아 부부는 손을 꼭 잡고 매장 전면에 전시돼 있는 V°73백을 바라봤다. 시종일관 웃는 모습이었다.

“소비자가 명품에 지쳤다”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V°73백은 역사가 짧다. 지난해 12월이 생일이다. 나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백이 밀라노의 엑셀시오르 백화점을 시작으로 파리, 로마, 피렌체, 뉴욕의 백화점 등 전 세계 250여 개 매장에서 팔리고 있다. 첫 생산물량 3000개는 광고와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금세 품절됐다. 한국에서는 올해 6월 롯데백화점에 처음 선보인 뒤 9개 매장에서 팔고 있다.

아르멜린 씨는 “이런 반응이 나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패션을 좋아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원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이자 CEO인 그레코 씨는 “거창한 명품에 지친 소비자들이 새로운 스타일을 찾던 중에 V°73 같은 새로운 백이 트렌드가 된 것 같다”며 “단순히 명품보다 싼 가격 때문이라면 각 백화점 명품관에 진열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쾌한 이탈리아 부부는 소비자들이 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색다르고 재미있으면서 소재와 품질을 꼼꼼히 본다는 얘기다. 아르멜린 씨가 V°73을 만들게 된 배경도 컬러리스트(색채전문가) 출신으로 신선한 컬러 백을 선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캔버스 천에 그려진 에르메스 버킨백은 실사 그대로가 아니라 디자인을 재해석해 다양한 색깔을 입히고 독특한 참(charm) 장식을 달았다.

아르멜린 씨는 “캔버스백에 친환경염료를 수작업으로 7번 덧칠해 실제 가죽을 덧댄 것처럼 보인다”며 “그래서 다른 페이크 백에 비해 두께가 도톰하고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도록 안정된 가방 형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취향이 바뀌고 있다고 해도 페이크 백의 바탕에는 역시 명품에 대한 욕망이 깔려 있다. 실제로 웬만한 시중의 페이크 백은 모두 명품 중의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 버킨백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반영된 셈이다. 왜 버킨백이냐는 질문에 그레코 씨도 “모든 여자들의 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아시아 진출의 중심

V°73백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V는 베네치아를 뜻하고, 73은 아르멜린 씨의 출생연도(1973년)이자 그녀가 베네치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틀리에 주소였던 73번가를 뜻한다. 베네치아는 부부가 처음 만난 장소이기도 하다. 가방 안의 빨간색 내피도 베네치아의 카니발 축제를 의미한다.

부부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그레코 씨는 오랫동안 신발 제조업계에서 일하며 1990년대 말에 부산의 신발공장을 찾아 한국에 자주 왔다고 한다. 그레코 씨는 “10여 년 만에 한국에 와서 신사동 가로수길 등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며 “한류 열풍이 왜 아시아를 휩쓸었는지 알 것 같았다”고 말했다.

부부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진출한 이유도 한류 열풍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아르멜린 씨는 “일본, 홍콩, 태국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지만 언제나 한국 시장은 아시아의 헤드 오피스 역할을 하며 중심을 잡게 될 것”이라며 “한국 패션이 아시아의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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