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 명인 가야금 선율 타고 ‘오래된 미래’가 묻어난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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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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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발레 ‘아름다운 조우’ ★★★☆

국립발레단의 ‘아름다운 조우’ 중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니콜라 폴 씨가 황병기의 창작국악곡 ‘비단길’에 맞춰 안무한 ‘노바디 온 더 로드’.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의 ‘아름다운 조우’ 중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니콜라 폴 씨가 황병기의 창작국악곡 ‘비단길’에 맞춰 안무한 ‘노바디 온 더 로드’.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이 27,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린 ‘아름다운 조우’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 씨의 기존 국악곡에 안무를 입힌 3개의 창작발레 작품으로 구성됐다. 이런 공연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반갑다. 올해로 창단 50주년을 맞은 국립발레단이 이제는 서양 고전을 훌륭하게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만의 특색 있는 발레를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첫 작품은 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지도위원) 박일 씨가 황 씨 작곡의 ‘아이보개’ ‘전설’ ‘차향이제’ 세 곡을 편집해 안무한 ‘미친 나비 날아가다’였다. 방랑 시인이자 자유인 김삿갓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풀었다. 두 번째 작품은 서울예술단 예술감독 정혜진 씨(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가 ‘침향무’와 ‘밤의 소리’를 엮어서 안무한 ‘달’이었다. 조선시대 여인들에게 달의 의미를 춤사위로 풀어낸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에서 황병기의 음악은 작품의 배경음이나 장식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줬다. ‘미친 나비…’는 춤 동작들이 고전 발레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데다 화려한 테크닉을 종종 사용해 ‘겉멋 든 10대 청소년’을 연상시켰다. ‘달’은 수많은 반찬으로 한 상 가득 차렸지만 별로 젓가락 갈 게 없는 한정식 같았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 하고자 하는 얘기는 많은데 이 모든 걸 하나로 엮는 중심이 없었다.

두 작품에 비해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베테랑 무용수 니콜라 폴 씨가 안무한 ‘노바디 온 더 로드’는 발군이었다. 춤사위에 담긴 메시지를 명쾌하게 붙잡을 순 없었지만 하나를 깊이 파고든다는 느낌을 줬다. ‘비단길’ 단 한 곡을 사용한 음악이 작품에 완전히 녹아 있었고 춤의 언어도 풍성했다.

세계 음악 시장에서 국악은 궁극의 현대성과 맞닿아 있는 ‘오래된 미래’로 여겨진다. 그러니 국악을 사용한 무용에서는 꼭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옛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 ‘노바디…’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음악에 접근했고, 발레 동작들을 과감히 허물어 가장 현대적인 몸의 언어를 창조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공연 리뷰#무용#국악#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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