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마약 도시’에 희망의 춤 가르치다

  • Array
  • 입력 2012년 9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 서울발레시어터, 제4 도시 툴루아서 발레교육 봉사

8일 오후 콜롬비아 툴루아 외곽 경찰학교 강당에서 이 지역 청소년들이 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로부터 춤을 배우고 있다. 툴루아=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8일 오후 콜롬비아 툴루아 외곽 경찰학교 강당에서 이 지역 청소년들이 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로부터 춤을 배우고 있다. 툴루아=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8일 남미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서북쪽으로 430km 떨어진 툴루아 시 외곽의 경찰학교 강당. 이 지역 10대 청소년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서울발레시어터(SBT) 단원들에게 춤 동작을 배우고 있었다. 대부분 14∼18세인 참가자 90명 중엔 집에서 성폭행을 당해 시설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15세 소녀도 있었고, 범죄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5명을 비롯해 이른바 문제 청소년도 여럿이었다.

SBT의 이 교육은 단순한 문화교류 차원의 행사가 아니었다. 마약과 폭력, 성매매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콜롬비아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가 올해부터 실시하는 ‘통합 예방 프로젝트(PIP)’의 일환이다.

인구 22만 명으로 콜롬비아 제4의 도시인 툴루아는 범죄 노출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정부가 꼽은 20곳 중 하나. 이 도시에선 경찰 통계로 올 한 해만 136명이 살해됐다. 지역 내 15개 고교 학생 중 약 40%가 코카인 등 마약에 노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PIP 교육 대상은 선정했지만 구체적 프로그램은 마련하지 못했던 콜롬비아 정부는 지구 반대편 한국의 SBT에 첫 교육을 위탁했다. SBT가 발레를 통한 노숙인 자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음을 아시아-이베로 문화재단을 통해 알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며 청소년기의 방황을 발레로 극복했던 제임스 전 SBT 예술감독이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스태프를 포함한 발레단 14명이 8∼10일 하루 5시간씩 3일간 총 15시간 동안 교육을 진행했다.

첫날 오후 교육은 발레의 기본동작과 마임레슨, SBT의 시범 공연,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 레슨으로 구성됐다. 두 명씩 짝을 이뤄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은 정말 아름답다. 함께 춤을 추겠느냐’란 의미를 발레의 마임으로 번갈아 표현하도록 한 프로그램과, SBT의 홍성우 조현배 단원이 진행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 레슨은 특히 반응이 뜨거웠다. 둘째 날에는 참가자들을 팀으로 나눠 ‘강남스타일’ 곡에 맞춰 직접 안무하도록 지도했고, 셋째 날에는 팀별로 안무 작품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미는 범죄의 유혹에 취약한 빈민 청소년에게 악기를 쥐여 줌으로써 새로운 삶을 열어준 ‘엘 시스테마’ 운동의 진원지다.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의 성공은 한국에서도 예술교육을 통한 청소년 교화의 붐을 낳고 있다. SBT의 콜롬비아 PIP 참여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뜻깊다. 3일 내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한 알레한드라 벨리스 양(15)은 “발레가 매력 있다. 체계적으로 배워 전문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SBT가 심은 씨앗 하나가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을까. 첫날 교육 때보다 한층 더 밝아진 콜롬비아 아이들의 표정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툴루아(콜롬비아)=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콜롬비아#무용#발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