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서구 작가들, 야만-폭력의 시대 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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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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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광주비엔날레 ‘라운드 테이블’ 주제로 11월 11일까지 전시

‘라운드 테이블’을 주제로 66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간 2012 광주비엔날레는 서구 중심이 아니라 아시아 중동 남미 등의 현대 미술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마이클 주의 ‘무제’는 광주의 5·18민주화운동 및 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난 시민운동과 연관된 작업으로 108개의 방패가 서로 연결된 설치작품이다. 광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라운드 테이블’을 주제로 66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간 2012 광주비엔날레는 서구 중심이 아니라 아시아 중동 남미 등의 현대 미술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마이클 주의 ‘무제’는 광주의 5·18민주화운동 및 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난 시민운동과 연관된 작업으로 108개의 방패가 서로 연결된 설치작품이다. 광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투명한 108개의 방패가 서로 연결된 상태로 공중에 떠 있다. 그 밑에는 점토로 만든 일상용품이 놓여 있다. 한국계 미국작가 마이클 주의 작품 ‘분리불가’는 과거 방어용으로 쓰인 방패가 지금은 시위를 진압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의미의 반전을 통해 광주항쟁과 최근 전 세계로 확산된 시민운동을 상기시킨다. 멕시코 작가 페드로 레예스의 ‘Imagine’은 권총 같은 살상무기를 변형한 악기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인간의 죽음을 돈으로 바꾸는 무기산업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제기한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 폭력을 드러낸다.

7일∼11월 11일 66일간 열리는 제9회 광주비엔날레에선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의 정치 사회적 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올해는 처음으로 그룹감독제를 도입해 김선정(한국), 마미 가타오카(일본), 캐롤 잉화 루(중국), 낸시 아다자냐(인도), 와산 알쿠다이리(이라크), 알리아 스와스티카(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출신 6명의 여성 큐레이터가 공동예술감독을 맡았다. 김 감독은 “수평적 상호작용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라운드 테이블’을 주제로 선택해 ‘같고 다름’이 공존하는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40개국 작가 92명의 작품들은 비엔날레 전시관을 포함해 시내 전역에 퍼져 있다.

공동감독들은 스타 작가와 서구 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 중동 동유럽 남미지역의 새로운 작가들을 조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지역의 맥락을 고려한 신작 프로젝트가 늘어난 점도 돋보인다. 서로의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감독들은 6개 소주제로 각기 전시를 꾸렸지만 비슷비슷한 개념적 작업이 많은 데다 내용면에서 변별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www.gb.or.kr

○ 역사를 돌아보다

이번 비엔날레는 식민지 지배의 역사에 대한 고찰부터 자본주의 병폐에 대한 고민, 디지털 세상이 가져올 변화까지 폭넓게 들여다본다. 일본의 모토유키 시타미치는 대동아공영권을 앞세워 아시아 곳곳에 건립한 신사의 출입문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지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가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시작한 ‘다리’ 연작의 경우 일본 전역에서 주민들이 만든 286개의 아주 작은 다리를 소개하며 공동체 회복에 대한 소망을 담아냈다.

아디다스 신발을 통해 다양한 분쟁지역 내 희생자들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아궁 쿠르니아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암살 과정을 어린이들로 재현한 영상작업의 와엘 샤키, ‘인도인을 죽이다’라는 의미의 힌두쿠시 산맥 풍경을 일상의 사물로 연출한 예르보신 멜디베코프 등은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겹쳐 드러낸다. 올해 비엔날레의 ‘눈예술상’ 수상자로 뽑힌 전준호 문경원 팀은 영상작품 ‘세상의 저편’에서 지구 종말 이후 살아남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00년 뒤 세계의 미래를 상상하고 이를 통해 현재를 되묻는 작품이다.

○ 광주와 호흡하다

멕시코 작가 페드로 레예스는 무기를 변형한 악기와 퍼포먼스를 선보여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의 문제를 제기했다.
멕시코 작가 페드로 레예스는 무기를 변형한 악기와 퍼포먼스를 선보여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의 문제를 제기했다.
올해는 지역밀착형 프로젝트가 알찬 편이다. 서도호는 시내 낡은 건물에 남아 있는 흔적을 종이에 목탄을 문질러 기록한 ‘탁본 프로젝트’, 기존 트럭을 동네 골목까지 이동 가능한 1인용 숙박시설로 개조한 ‘틈새 호텔’로 주목받았다. 부동산을 동산으로 옮기는 기존 작업의 문맥과 연계하면서 시민과의 소통을 시도한 작업이다. 올해 양현미술상 수상자인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는 광주극장의 용도 폐기된 사택에서 찾아낸 물건으로 작품을 만든 ‘자동건축 작업실’을 선보였다. 전시장을 찾은 아이들이 탈 수 있도록 중고 자전거를 재활용한 스콧 이디의 ‘100대의 자전거 프로젝트’, 대인시장에서 일하는 아줌마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손톱에 자기 작품의 이미지를 매니큐어로 칠한 필리핀의 포크롱 아나딩의 작업도 흥미롭다.

도심 속 사찰 무각사에서는 장소에 맞게 삶을 성찰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의사 출신 독일 작가 볼프강 라이프는 쌀더미와 자신이 모은 헤이즐넛 꽃가루를 배열한 작품으로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깨우쳐 준다. 같은 곳에 자리한 8개의 작은 방에 무지개색 스크린을 설치해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선물한 우순옥의 작품도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광주=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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