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당신의 가슴속엔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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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의 대화]동요 속의 과꽃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보면 꽃 속에 누나 얼굴 떠오릅니다. 시집간 지 어언 삼년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다른 많은 분들처럼 필자에게도 동요 ‘과꽃’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이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5학년 음악수업 시간이었을 것이다. 어린 나에게도 그 노래의 알 듯 모를 듯한 애잔함이 깊게 다가왔다. 지금까지도 유난히 슬픈 느낌의 동요로 기억할 정도다.

누나가 세 명이나 있었던 필자는 그녀들에게 과꽃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았다. 한결같이 “몰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왠지 모를 애잔함으로 감성을 적셔주었던 노래 가사가 거짓말이었구나.’ 필자는 어린 심정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가사 중 ‘누나는 과꽃을∼’ 부분을 ‘엄마는 과꽃을∼’로 바꿔 부르기까지 했다. 그런 탓에 얼마 전까지도 잘못 기억된 가사가 진짜인 양 착각을 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이나 학생들에게 과꽃을 소개하면서 “예전 어머니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했던 꽃”식으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과꽃은 작사가(어효선·1925∼2004)의 누나 세대나 좋아했을 꽃이었다. 아바(ABBA·1970년대 활동했던 스웨덴의 4인조 팝송 혼성그룹)의 노래 같은 팝송이나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같은 달콤한 포크송에 심취했던 필자의 누나들이 특별히 좋아했을 리가 만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과꽃과 베고니아, 그리고 데이지

세월이 더 지나 필자의 어머니가 5남매와 함께한 치열했던 ‘현역 생활’을 마치고 여유를 찾으시게 됐다. 어머니는 집안 곳곳에 꽃을 기르기 시작하셨다(사실 그전까지는 어머니가 화초를 기르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앞뜰 라일락 밑에는 옥잠화와 봉선화, 현관 계단에는 채송화와 분꽃, 그리고 장독대에는 바로 과꽃을 심으셨다.

필자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머니는 과꽃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 연배 할머니들 특유의 타박하는 듯한 억양으로, 심드렁하게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 과꽃이며 채송화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지”라고 대답하셨다. 순간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노래에는 그 시대의 생활상이 반영돼 있는 게 맞구나!’

사실 과꽃 하면 누나(떠난 사람), 애잔함, 장독대 등을 떠올리는 ‘감정의 고리’를 완성할 수 있는 세대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모든 세대에 걸쳐 일어난다. 필자의 세대는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에서 ‘프리지아 꽃향기를 내게 안겨줄 그런 연인’을 만나거나, ‘안개꽃을 든 여인’을 추억 속에 간직하며 1980, 90년대를 보냈다. 이런 감성을 다른 세대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테고, 필자의 세대 역시 알렉스의 ‘데이지’ 노래 가사에 공감이 잘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과꽃 자체를 보기 힘든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더더욱 동요 ’과꽃‘의 감성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너무나도 직관적이며 직접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서 상징을 통한 감성이 쉽게 통하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물론 젊은 세대도 나이가 들면 옛 정서에 공감할 수 있다.

○ 장독대에 심었던 진분홍 꽃

과꽃은 우리나라 북부지방과 중국 동북부에 자생하는 한해살이풀꽃이다. 한번 심어 놓으면 씨앗이 떨어져 매년 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흔히 과꽃을 여러해살이풀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큼지막한 꽃을 열 송이 내외 피우는, 수더분한 포기 모양이 지금의 우리 눈에는 다소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꽃 색이 제법 화려하다.

과꽃은 늦여름에서 초가을까지 오랫동안 진분홍이나 보라색으로 피어난다. 햇빛을 좋아해 볕이 잘 드는 곳에 심어 기르는 게 좋다. 그래서 예전에는 과꽃을 장독대 주변에 많이 심었다. 줄기가 너무 웃자라면 꽃이 엉성하게 피어 예쁘지가 않다. 이럴 때는 초여름 줄기가 막 올라올 때 순지르기를 하면 좋다. 줄기를 잘라낸 부분에서 좀 더 작은 줄기가 여러 대 올라와 아담하게 꽃을 피운다. 최근에는 앙증맞은 작은 꽃을 피우는 품종들이 개발됐다. 이런 품종들은 여름철 꽃다발로 이용되기도 한다.

오늘 길가에서 본 과꽃을 통해 30여 년 전 정겨웠던 옛 시절을 떠올릴 수 있어 무척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과꽃을 좋아하는지 저녁에 누나에게 전화를 해 봐야겠다.

서정남 농학박사(농림수산식품부 국립종자원) suhjn@korea.kr
#과꽃#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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