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박진감 넘치는 정명훈표 연주, 4시간이 금방

  • Array
  • 입력 2012년 8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시향의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

트리스탄 역의 존 맥 매스터(왼쪽)와 이졸데 역의 이름가르트 필스마이어. 서울시향 제공
트리스탄 역의 존 맥 매스터(왼쪽)와 이졸데 역의 이름가르트 필스마이어. 서울시향 제공
마지막 노래를 마친 이졸데(이름가르트 필스마이어) 위로 한줄기 빛이 내려왔다. 조명은 어두워진 무대와 대비되며 죽음과 부활의 접점으로서의 사랑을 찬란한 영원의 순간으로 새겼다.

국내 최초로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 3막이 공연된 24일. 자정을 넘겨 다음 날 새벽으로 향하던 시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있던 거의 모든 관객이 일어서서 갈채를 보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을 일으켜 세우던 정명훈은 객석을 향해서도 박수를 보냈다. 4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의 차이를 벌려놓는 예술의 진면목이었다.

음악과 극이 결합된 장르인 오페라에서 무대장치와 연기를 빼고 오로지 노래와 음악으로 이끌어가는 이날의 ‘오페라 콘체르탄테’ 형식은 차라리 문학적이었다. 장면 장면이 명쾌한 상상력의 필터를 통해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음악과 서사가 효과적으로 결합됐을 때, 그것이 일반적인 오페라 이상으로 작품을 통찰할 수 있는 집중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보여주었다.

드라마틱하고 박진감 넘치는 것으로 유명한 정명훈의 오페라 지휘는 바그너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3년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2001년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탄호이저’, 2004년 같은 악단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주했던 정명훈은 전막 공연을 통해 다져진 지구력으로 1막부터 3막까지 흔들림 없이, 오히려 점차 상승곡선을 긋도록 이끌었다. 3막 전주곡에서 표현한, 어둡게 일렁이는 심연의 깊이는, 1막 전주곡 때보다 단원들의 몸이 풀렸음을 알려주었다.

음악과 텍스트 외에 성악가의 외모 등 제3의 요소들은 극에의 몰입을 방해하지 못했다. 트리스탄 역의 존 맥 매스터는 리허설 때 컨디션 난조라는 말이 돌았으나 막상 무대에서는 선전했다. 그래도 2막 이후에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필스마이어도 막이 진행되며 하강곡선을 그었지만 아스트리드 바르나이의 제자답게 강렬한 소릿결을 장시간 유지했다. 브랑게네 역의 예카테리나 구바노바는 체칠리아 바르톨리를 연상시키는 적극적인 몸짓과 에너지 넘치는 가창으로 성악진 중 가장 큰 갈채를 받았다.

공연은 끝났지만 귓가에는 바그너의 무한 선율이 끝없이 맴돌았다. 역사적인 이번 공연이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바그너 공연에 상징적인 시도동기(Leitmotiv)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한국인의 열정으로 세계를 지휘하라’ 저자
#공연 리뷰#음악#클래식#트리스탄과 이졸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