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말도 안되는… 그래도 솔깃한 ‘배설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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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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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뮤지컬 ‘샘’ ★★★

화장실로 무대를 꾸민 창작 뮤지컬 ‘샘’. 연희단거리패 제공
화장실로 무대를 꾸민 창작 뮤지컬 ‘샘’. 연희단거리패 제공
올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창작뮤지컬상을 받은 ‘샘’(이채경 작·연출)은 ‘화장실 오페라’라는 부제대로 화장실과 변기를 전면에 앞세우고 배설과 관련된 음향을 요란하게 동원했다. “말도 안 되는 코미디를 쓰고 싶었다”는 창작자 이 씨의 말대로 공연은 투박하고, 개연성도 허술한 데다 상황 전개도 엉망진창. 하지만 산만한 가운데서도 귀담아들을 만한 ‘배설의 철학’을 오페라풍의 클래식한 선율(폴 캐슬스 작곡)의 묘한 불협화음 속에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변기 3개가 객석을 향하고 있는 여자 화장실. 변비녀(박인화)가 바람난 남자에게 버림 받은 실연의 아픔을 못 이겨 자살하려고 한다. 변기를 뜯어가려고 화장실에 침입한 변기도둑(오동석)이 변비녀의 사정을 알고는 돕자고 나선다. 이 와중에 설사녀(강국희)가 등장해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폭탄 같은 설사를 해대는데, 아뿔싸 그만 좌변기에 엉덩이가 끼여 버린다. 변기도둑과 변비녀가 힘을 합쳐 설사녀를 변기에서 빼내려 하지만 꽉 낀 엉덩이는 꿈쩍도 안한다.

제목은 프랑스 화가 마르셀 뒤샹이 ‘샘(fountain)’이란 제목 아래 변기를 예술품으로 둔갑시킨 것에 착안했다. 주제는 변기도둑이 어린 시절 만난 변기요정의 노랫말에 함축돼 있다. “삶이란 평생 똥오줌을 만드는 과정, 사랑은 서로의 똥오줌을 받아들이는 것.”

변기도둑은 똥오줌을 몸 밖으로 빼내야 할 ‘독소’로, 변기는 독소를 군말 없이 받아내는 ‘사랑’의 상징으로 여긴다. 배설은 독소를 빼내 몸을 깨끗하게 하는 카타르시스 작용이다. 관계에서 받는 상처도 응어리진다는 점에서 심리적 똥오줌이다. 건강한 관계란 서로에게 상처를 군말 없이 끌어안을 변기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변비녀, 설사녀 같은 ‘배변 불량자’들은 관계불량에 고심하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화장실은 모순의 공간이다. 생리적 카타르시스의 공간이면서 타인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밀실이기 때문. 설사녀가 그토록 원하던 아기를 변기 속에 낳을 때 화장실의 칸막이들이 사라지는 것은 그런 모순의 해소로 읽혔다.

:: i :: 9월 9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3만 원. 02-763-1268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공연 리뷰#연극#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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