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15세기 베네치아 동전 ‘두카트’는 글로벌 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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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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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도시 베네치아/로저 크롤리 지음·우태영 옮김
560쪽·2만6000원·다른세상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 베네치아는 척박한 토지와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의 무역 활동을 통해 세계사에 남을 변화를 이끌어냈다. 다른세상 제공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 베네치아는 척박한 토지와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의 무역 활동을 통해 세계사에 남을 변화를 이끌어냈다. 다른세상 제공
15세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는 현금으로 유지되는 도시였다. 베네치아의 동전 두카트는 당시의 국제통화였다. 베네치아 리알토 항구에 들어선 이방인들은 그곳의 풍요로움에 황홀함을 느꼈다. 카펫과 비단 생강 모피 후추 유리 꽃 등 ‘지상의 모든 것’이 항구에 쏟아졌다. 이들은 하역된 뒤 사고 팔리고 다시 포장되어 어딘가로 운반됐다. 관광객들은 이곳을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장소’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을 지중해 섬나라 몰타에서 보낸 미국인 저자는 그때의 경험으로 지중해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탄탄한 사료를 바탕으로 베네치아의 역사를 풀어내고 여기서 오늘의 국가와 글로벌 기업들이 얻을 교훈을 끌어냈다. 베네치아의 정치인과 상인 계층 사이에는 구분이 없었다. 사업가들은 예의 바른 중세 기사들을 대신한 새로운 유형의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봉건적이고 토지 소유를 중시한 피렌체 사람은 “베네치아에서는 모두가 상인이다”고 놀라워했다. 베네치아의 총독은 물론이고 예술가나 여성, 하인과 성직자들도 무역에 참여했다. 손에 현금을 조금이라도 쥔 사람은 누구나 항구에 나가 상품을 사고팔았다.

책은 베네치아의 성공 비결이 규칙성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들은 시간을 민감하게 인식했다. 배송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간파해 계절의 주기에 따라 항해 일정을 조정했다. 외국 상인들에게 원하는 상품이 베네치아 시장에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수요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지구 반 바퀴를 돌며 재화를 이동시키고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물건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중개상 역할을 했다.

당시 이탈리아 도시국가 가운데 베네치아는 고대 로마시대엔 빛을 보지 못했던 곳이다. 땅이 척박해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천연자원도 나지 않았다. 인구도 적었다. 바다로 눈을 돌린 베네치아인들이 발견한 황금열쇠는 무역이었다. 그들은 선박에 마르코 성인의 사자 깃발을 달고 세계 곳곳을 누볐다. 1343년 교황에게 이슬람 세계와의 무역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동서양이 종교 문제로 팽팽히 대립하던 시기에 이슬람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은 최초의 유럽 강대국이었다.

베네치아의 외교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제노바가 적국에 무장 갤리선을 보낼 때 베네치아는 외교관을 보냈다. 충분한 해군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무력 대신 외교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전술을 썼다. 이슬람 세계의 술탄이나 맘루크 같은 변덕스러운 지배자들에게는 후한 선물을 주어 달랬다. 상인들이 투옥되거나 물건을 도둑맞는 경우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 참을성을 갖춘 대사를 신중하게 임명했다. 훗날 외교의 본가임을 자부하는 영국마저 “현대 외교는 13세기 베네치아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책의 향기#역사#인문#부의 도시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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