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규 순천향대 교수 “韓-中열린 자세로 교류했을 때 둘 다 번성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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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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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륙 속 한국문화 찾기 20년

박현규 순천향대 교수는 “이사를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웃으로 지내야 하는지를 자문해보면 한국과 중국은 교류의 지향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박현규 순천향대 교수는 “이사를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웃으로 지내야 하는지를 자문해보면 한국과 중국은 교류의 지향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박현규 순천향대 중문학과 교수(54)는 방학이 되면 400만∼500만 원의 노잣돈과 배낭을 챙겨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필요한 경비는 월급을 조금씩 아껴 모아 마련한다. 이렇게 중국 대륙을 답사해 숨어 있는 한국 문화의 흔적을 확인하고 발굴해온 지 20년이 넘었다.

저장(浙江) 성에는 지금도 ‘신라신(新羅神)’을 믿는 중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송나라가 고려 사신을 특별히 융숭하게 대접하려고 지어놓은 쑤저우(蘇州)의 고려정관 위치도 찾아냈다. 본보가 한중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6월 25일부터 7월 30일까지 5회에 걸쳐 보도한 ‘박현규 교수와 함께한 대륙 속 우리 문화 흔적을 찾아서’는 그의 오랜 연구 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역사 속 현장을 가려면 중국의 옛 지도를 구해 위치를 확인하고, 그 지역 도서관을 찾아 지방 역사서까지 읽어야 합니다. 작은 실마리라도 발견하기 위해 향토사학자를 찾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마을 노인들에게도 물어야지요.” 박물관이나 학술서점에서 못 보던 비석 탁본집이라도 발견하면 그의 눈은 커진다. 문헌에서 발견하기 힘든 한중 교류의 실마리가 비석에 새겨져 전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산둥(山東) 성에서 크게 활약한 신라인으로 장보고 외에 ‘김청’이라는 상인이 있었다는 사실도 비문을 통해 확인했다.

박 교수는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한중 교류의 현장을 연구해 약 200편의 논문을 썼다. 그는 “양국은 서로 강역을 침범할 때도 있었지만 개방적인 태도로 존중하며 교류했을 때 모두 번성했다”는 잠정 결론을 얻었다.

“한국은 중국 문화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교류라는 것이 상호 침투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간과한 오해입니다. 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것은 문화의 발원지가 아니라 상대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문화 주체성이지요.” 예컨대 한자가 중국에서 유래됐지만 지금은 한국의 언어체계에서 독창적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더는 중국의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중국과 수교를 맺기 직전부터 중국 답사를 시작한 박 교수는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역사 갈등이 빚어진 이후 중국학자들로부터 협조를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이는 양국 모두에 불행한 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고려인의 해상 교역로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던 타이저우(台州) 시 앞바다의 고려두(高麗頭)산을 답사하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뻔하기도 했다. 연구비 지원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험한’ 연구를 하는 이유를 묻자 “세상에 보탬이 될 만한 일을 한 가지는 하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중 교류의 긴 역사에서 보면 양국은 관계가 좋을 때 이전 시대의 유적지를 많이 복원 해왔어요. 오늘의 한국과 중국도 새로 발견한 역사적 현장을 한중 우호교류의 상징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복원하면 좋겠습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박현규#한중 교류#한중 문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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