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화가 최북은 기인(奇人)이었다. 그림을 강요하는 높은 벼슬아치의 위협에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저항했고, 금강산 관광 후 술을 잔뜩 마신 채 “천하 명인 최북은 천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고 외치고는 투신했다.
그런데 산수화에 뛰어나 ‘최산수’로 불리던 그가 금강산을 그린 ‘헐성루망금강도(歇惺樓望金剛圖)’는 의외로 얌전하고 따뜻하다. 점을 여러 번 겹쳐 찍어 형태를 표현하는 미법(米法)으로 그렸는데, 그의 괴팍한 기질과 달리 소박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반면 겸재 정선이 단발령에 올라 마주 보이는 금강산을 그린 ‘단발령도(斷髮嶺圖)’를 보면 마치 금강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하늘로 솟아오른 기암괴석이 진경산수의 대가다운 솜씨를 드러낸다.
9월 25일까지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내 포스코미술관에서는 ‘겸재부터 혜원까지, 천재화인열전’이 열린다. 최북 정선 김홍도 신윤복 윤두서 등 조선 중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29인의 작품 44점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전시는 관념산수화 진경산수화 풍속화 문인화 등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김홍도가 부채에 그린 산수화 ‘임수간운도(臨水看雲圖)’를 보면 그가 풍속화에만 능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깊은 산 속임을 표현하기 위해 능선을 과감히 생략하고 폭포와 노송(老松)을 앞세운 대범함이 돋보인다. 고양이가 참새를 잡는 순간을 포착한 변상벽의 ‘묘작도(猫雀圖)’를 보면 웃음이 피식 나온다. 잡고 잡히는 동물 모두의 긴장감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정약용 한호 김정희 등 문인들의 서예 작품도 전시한다. 전시 작품 중 상당수는 개인 소장품이라 평소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무료. 02-3457-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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