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밥’이 되어버린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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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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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왜 부조리한가/레오 카츠 지음·이주만 옮김
336쪽·1만5000원·와이즈베리

올여름 화제작인 SBS 월화드라마 ‘추적자’를 보면서 사람들은 드라마 속 법의 부조리에 유독 분노한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도리어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은 대중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만든 법이 왜 우리의 도덕과 상식을 배반하는지를 따지고 든다. 장기 매매처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거래를 법으로 금지하고, 판결은 유죄 아니면 무죄로만 갈리며, 악행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바로 저자가 다루는 법의 모순들이다.

도덕적으로 악랄해 보이는 범죄가 기대보다 약한 처벌을 받을 때 사람들은 사법제도의 모순에 분노하고 사회정의를 의심한다. ‘추적자’ 속 평범한 형사 아버지가, 딸을 죽이고도 뉘우치지 않는 범인이 무죄 선고를 받자 이성을 잃었던 경우가 그렇다. 저자는 특히 기대 형량과 실제 형량 간의 딜레마를 다루는 대목에 방점을 찍는다. 예를 들어 음주 운전 중 행인을 치어 죽이고 경찰을 피해 달아난 범인은 한 번의 범행으로 살인, 뺑소니, 공무집행방해라는 다수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 되지만, 한 차례 만남에서 성관계 도중 피해자를 수차례 폭행한 가해자에게는 단 한 건의 강간죄만 적용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저자는 이런 법의 부조리함이 근본적으로 논리 간의 충돌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유권자의 투표행위를 연구한 결과 발전한 ‘사회선택이론’을 도구 삼아 사람들이 별다른 의문 없이 받아들이거나 막연히 불편하게 느꼈던 법의 딜레마를 파헤친다. A, B, C 세 후보의 선호도가 A, B, C 순이라고 해도 A 후보와 C 후보가 맞붙을 경우 전자가 승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콩도르세의 역설’이 이론의 핵심이다. 법의 제정과 집행에서도 이 같은 역설이 성립되기 때문에 부조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들을 배려해 철학 경제학 통계학 심리학 연구 결과를 망라하고 다양한 상황극을 제공한다. 다만 비유로 드는 이야기를 때로 장황하게 펼쳐놓아 문제의 본질을 놓치거나 흐리기도 하는 점이 아쉽다. 법에는 왜 허점이 많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일반인의 상식과 법률기관의 타당성 사이에서 빚어지는 간극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허점을 인지하고도 시정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넘어가는 데선 맥이 빠진다.

책의 감수를 맡은 금태섭 변호사는 추천사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그 다음에 읽을 책으로는 이 이상 가는 것이 없을 것”이라며 로스쿨 재학생이나 로스쿨 입학을 희망하는 예비법조인들에게 일독을 권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책의 향기#인문사회#법#법은 왜 부조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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