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구글안경 월드 쇼크… 그러나 ‘신기술’과 ‘실용화’는 다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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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발명 200년만에 햇살… 강화유리, 50년만에 대박

#1 영화 속 안경

지난해 개봉한 영화 ‘미션 임파서블4’의 한 장면. 이 영화에 나오는 지능형 콘택트렌즈는 얼굴인식은 물론이고 영상 무선전송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동아일보 DB
지난해 개봉한 영화 ‘미션 임파서블4’의 한 장면. 이 영화에 나오는 지능형 콘택트렌즈는 얼굴인식은 물론이고 영상 무선전송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동아일보 DB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터미네이터’ 1편(1984년)과 2편(1991년)에 등장하는 T-800(아널드 슈워제네거). 로봇의 눈은 인간 얼굴인식 기능은 물론 신체 사이즈까지 정확히 판별해낸다. 체온 감지나 영상 확대는 기본이고, 증강현실(AR)을 활용한 데이터 정보들이 끊임없이 화면을 메운다. 이후 수많은 SF 영화가 이 ‘터미네이터 렌즈’로 기계들의 시선을 연출했다.

‘미션 임파서블’ 2편(2000년)을 연출한 존 우 감독은 주인공 이선 헌트에게 미션을 전달하는 첫 장면에 첨단안경을 등장시켰다. 브래드 버드 감독이 맡은 4편(2011년)에서도 안경에 대한 상상력이 맘껏 발휘된다. 미국 IMF 소속 첩보원이 착용한 지능형 콘택트렌즈는 용의자의 얼굴을 인식해 스마트폰에 신상정보를 전송(안타깝게도 그 짧은 사이 미녀 킬러에게 총을 맞고 죽지만)하고, 핵무기 발사코드를 스캔해 다른 곳의 프린트로 영상데이터를 전송한다.

#2 만화 속 안경

만화는 기술발전이 가져올 상황을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2007년 일본 NHK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전뇌코일(Coil a Circle of Children)’은 비교적 가까운 미래인 20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시력과 상관없이 ‘전뇌안경’이라는 특수 안경을 쓴다. 이 안경을 쓰면 현실세계와 함께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사물까지 동시에 볼 수 있다. 바로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가상 애완동물(전뇌 펫)이 안경을 벗으면 시야에서 사라지는 식이다. 전뇌안경은 또 각종 디지털 정보를 눈앞 가상공간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이소 미쓰오 감독은 기술적으로 완벽한 ‘유비쿼터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부작용과 윤리문제를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담담히 묘사했다.

#3 현실 속 안경

지난달 초 구글플러스를 통해 공개돼 IT업계는 물론이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구글안경.사진출처 구글플러스 홈페이지
지난달 초 구글플러스를 통해 공개돼 IT업계는 물론이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구글안경.사진출처 구글플러스 홈페이지
지난달 초 구글은 스마트 안경의 시제품, 일명 ‘구글 안경’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안경은 음성인식 검색 통신 광학 디스플레이 등 각 부문의 최첨단 기술이 초경량 부품으로 실현돼야 제품화가 가능하다. 영화나 만화 속에나 있을 법한 그런 안경이 곧 현실에도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파를 던졌다. 경쟁업체들도 이에 질세라 신기술 개발에 관한 잰걸음에 나섰다. ‘구글 안경’이 구글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지 열흘 만에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게임업체 밸브와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 개발을 논의했을 거라는 보도가 나왔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선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한 전운이 감돈다.

기술이란 게 늘 그랬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그린 비행기는 현재 매우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소설 속에나 등장했던 달에도 인간들은 기어이 발자국을 남겼다. 그러니 영화나 만화에서 봤던 안경 하나가 실제 개발된다 한들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닐 것 같다. 물론 시장에서 ‘구글 안경’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뛰어난 기술이라고 반드시 당대에 큰 성공을 보장하진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깜짝 쇼’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첨단기술들이 얼마나 가까운 미래에 어느 만큼이나 구현될지 생각하는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 ‘기술=성공’이란 공식은 없다

L당 2000원이 훌쩍 넘는 고유가 시대. 차를 사려는 사람들은 당연히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눈길이 간다. 차 가격은 비싸지만 유지비가 덜 들기 때문. 그런데 전기 자동차가 가솔린 자동차보다 훨씬 먼저 발명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솔린 자동차는 19세기 말에 처음 만들어졌지만, 전기 자동차는 이보다 수십 년 앞선 1820, 30년대에 동시다발적으로 발명됐다. 1900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에는 약 4000대의 자동차가 있었는데 전기 자동차와 스팀 자동차, 가솔린 자동차가 각각 3분의 1씩이었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생명과학·과학기술학)는 “전기 자동차는 100년 전에도 기술적으로 가장 세련되고 친환경적인 차였다”며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는 역시 가격이었다”고 설명했다.

전기 자동차는 1970년대 석유파동 때문에 잠깐 주목을 받다 이내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이후에도 비싼 가격과 정책적 무관심 때문에 거의 사장되다시피 했다. 지구온난화와 석유고갈 문제가 현실화된 최근엔 사정이 달라졌다. 세상에 태어난 지 200년 가까이 지나서야 재조명받게 된 전기 자동차는 첨단기술도 환경이 뒤따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력히 전한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에 널리 쓰이는 강화유리가 그것이다. ‘고릴라 글라스’라 불리는 미국 코닝의 강화유리는 사실 1960년대에 발명됐지만 시장을 찾지 못해 거의 잊혀졌던 ‘장롱 특허’였다. 이 유리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2007년 아이폰에 적용되면서부터다. 50년 만의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고릴라 글라스’는 30여 개 기업의 최소 350개 제품에 활용되고 있다. 코닝은 지난해에만 이 제품을 7억 달러(약 8000억 원)어치나 팔아치웠다. 이보다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을까.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박병원 미래연구센터장은 “기술이 산업화에 성공하고 시장을 만들려면 굉장히 험난한 과정을 수없이 많이 거쳐야 한다”며 “구글 안경도 얼마나 좋은 기술력이 투입됐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실제 소비자들이 그것을 필요로 할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 미래기술 예측은 언제나 정확한가

‘우주전쟁’ ‘타임머신’ ‘투명인간’ ‘해저 2만리’ 등을 쓴 영국 공상과학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1866∼1946)는 결과적으로 기술의 발전을 누구보다 정확히 예측(‘예견’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 모르지만)했다. 수십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바다 깊숙한 곳이나 지구 밖으로 사람이 직접 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의 ‘뉴아틀란티스’(1627년)에는 오늘날 유전자변형물질(GMO) 또는 유전자변형생물체(LMO)로 불리는 하이브리드 농산물이 나온다. 책을 읽은 당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그조차도 유전자 조작이 실현될 거라고 믿었을까.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인 1972년 로마클럽(1968년 세계 지도급 인사들이 이탈리아 로마에 모여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결정한 연구단체)은 “원대한 우주로 나갈 것 같았던 인류가 조만간 성장의 한계를 맞이하고 21세기에 붕괴한다”는 내용의 보고서(‘성장의 한계’)를 펴냈다. 당시 연구를 맡았던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진은 1900∼1970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1970∼2100년의 인구, 식량, 산업, 환경, 에너지 등의 추이를 예측해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1970∼2000년의 데이터를 검증한 결과 대부분의 예측이 정확히 맞았다는 점이다. 세계미래학회가 1967년 발간된 학회지 ‘퓨처리스트’ 1호에의 예측들 중 35개 항목을 검증한 결과 23개(68%)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보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일본은 1970년 이후 5년에 한 번씩 ‘기술예측조사’를 시행하고 있는데 30년쯤 지난 뒤 검증했더니 60% 이상의 정확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래학자들은 여전히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래(future)’가 아닌 ‘미래들(futures)’이라고 말하기를 즐겨한다.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연구부의 서용석 박사(정치학)는 “하나의 정해진 미래를 정확히 알아낼 방법은 없다”며 “다만 여러 대안적인 복수의 미래를 제시하는 게 미래학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래학 분야의 석학인 짐 데이터 하와이주립대 교수의 제자다.

다시 구글 안경으로 돌아가 보자. 구글 안경은 일종의 ‘입는 컴퓨터’다. MIT 연구팀이 1966년 이 개념을 처음 제안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라는 얘기다. 차세대 학문으로 불리는 인공지능(AI)도 전산학자인 존 매카시(1927∼2011)와 수학자인 마빈 민스키가 1956년 MIT에 AI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56년이 흘렀다. 학자들은 AI 구현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획기적 연구 성과를 내왔지만, 당시 꿈꿨던 만큼의 속도를 내진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상상 속에만 머물다 이미 사라져버리고 흔적조차 남지 않은 개념들도 우리 주변엔 무수히 많을 터이다.

홍 교수는 “기술은 개발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책임자와 개발자 모두 기술에 대한 안목을 가져야 한다”며 “1970년대 제록스가 ‘앨토(Alto)’라는 컴퓨터를 먼저 개발했지만 결국 세상을 바꾼 것은 아이디어를 모방해 ‘매킨토시’를 만든 잡스였다”고 강조했다. 제록스의 유망한 컴퓨터 공학자였던 앨런 케이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직접 만들어내는 것(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invent it)”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발명품이 시장에서 어떤 혁명을 일으킬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셈이다. 아이러니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구글안경#신기술#실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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