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神을 믿지 않아도… 그들은 더 평화롭고 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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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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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는 사회/필 주커먼 지음·김승욱 옮김/368쪽·1만6000원·마음산책

덴마크와 스웨덴 사람들은 삶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현세를 살아갈 뿐이다. 그렇기에 더욱 가족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스웨덴 가족. 마음산책 제공
덴마크와 스웨덴 사람들은 삶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현세를 살아갈 뿐이다. 그렇기에 더욱 가족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스웨덴 가족. 마음산책 제공
신을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 죽음을 앞두고 둘 중 누가 더 괴로워할까.

덴마크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안네는 “기독교인 중 상당수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천국에 가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죄책감을 느낀다”고 전한다. 반면 무신론자들 대부분은 ‘인간의 삶도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죽음과 함께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편안히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두 나라 덴마크와 스웨덴은 ‘비종교적 국가’로 꼽힌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90% 이상이 하느님을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그 비율이 51%와 26%에 불과하다. 또 미국인의 81%가 내세를 믿지만 덴마크와 스웨덴은 30%와 33%만이 믿는다고 답했다. 놀랍게도 덴마크와 스웨덴의 국교는 기독교의 한 갈래인 루터교다.

제목이 도발적인 이 책은 기독교의 영향력이 큰 나라인 미국의 사회학자가 비종교적 사회인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14개월 동안 살며 그 나라 사람 15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엮었다.

“난 우리보다 커다란 존재가 저 높은 곳에 있다고 믿고 싶어요. 하지만 이성은 그런 존재가 없다고 말하죠.”(소니 씨·31)

이런 이들은 초월적인 존재가 우주를 창조했다는 식의 창조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진화론이 인간의 생명과 우주의 탄생을 더 과학적으로 설명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죽음관에도 영향을 준다. ‘현세는 죄악으로 가득 찬 지옥이고 내세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은 이런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기 힘들다. 이들 대부분은 죽음을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며 이후의 일은 상상하지 않는다. 그 대신 현재의 삶에 충실하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90% 정도는 죽음 다음의 일 같은 걸 걱정하진 않을걸요. 가족을 먹이고 입히는 일을 걱정하죠. 삶의 의미라는 건 그냥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 아닌가요.”(요나스 씨·25)

저자는 이 두 사회가 종교성은 옅지만 도덕적 윤리적 경제적으로 문제없이, 오히려 종교성이 충만한 미국 사회보다 풍요롭게 살아간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약자에 대한 배려도 미국 사회보다 더 강하게 나타난다. 아동복지 수준을 평가한 2007년 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과 덴마크가 2위와 3위로 수준이 높았다. 가난한 나라를 위한 자선행위를 많이 한 나라 순위에서도 덴마크가 2위, 스웨덴이 3위를 차지했고 그 밖에도 높은 순위의 나라 대다수가 비종교적이었다.

이들은 ‘착하게’ 사는 이유에 대해 초월적인 존재를 믿어서, 또는 그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즉, ‘성경이 하느님의 신성한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은 책’이라든가 ‘예수가 말 그대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 등에선 고개를 갸웃거려도 ‘가난한 이를 도와라’ 등 종교적 가르침에는 공감하고 따른다는 것.

이들은 대체로 비종교적이지만 종교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기독교가 이들의 가치관에 스며든 생활윤리 또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난 하느님을 믿지 않아요. 하지만 난 교회를 계속 지키고 싶어요. 난 그게 덴마크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해요.”(기테 씨·40대)

저자는 “종교는 만악의 근원”이라는 사회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처럼 “신이 없어야 행복한 사회가 된다”거나 “신을 믿으면 불행해진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종교성이 약해도 위험한 사회는 오지 않고 오히려 더 도덕적이고 풍요로운 사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할 뿐이다.

미국인 독자와 우리가 받아들이는 종교의 의미는 조금 다를 듯하다. 사람들의 일상에 신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나라도 덴마크나 스웨덴처럼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정치 지도자가 특정 종교에 대해 강한 믿음을 표시하면 비판을 받기 쉽다. 우리에겐 이라크 침공을 앞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기도로 하느님께 조언을 구한 끝에 침공하기로 했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던 미국 사회가 더 특이해 보이지 않는가.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책의 향기#인문사회#신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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