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술시장의 허세를 간파한 위조사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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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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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위조사건/래니 샐리스베리, 앨리 수조 지음·이근애 옮김
416쪽·1만5000원·소담출판사

“서류만 제대로 갖춰지면 미적인 결점 따위는 중개업자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90년대 초 영국을 비롯해 전 세계 주식시장의 거품이 꺼졌다. 투자자들은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때 새롭게 각광받은 대상이 미술품이다. 매매차익에 의한 수익뿐 아니라 ‘문화인’ ‘교양인’이라는 이미지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기 때문. 당시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자금난에 허덕이던 상황이었다. 예술가들의 일기나 편지, 작품 판매 영수증, 도록, 소장 등 각종 문서를 보관하는 미술관 내 기록보관소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

이때 영국 미술계에 매력적인 신사 한 명이 등장했다. 부유하고 학식 있는 교수로 보이는 이 남자는 현대화가의 작품을 여러 점 기증하는 건 물론이고 기부금까지 내놓겠다고 했다. 미술계 인사들은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가 미술관 기록보관소의 열쇠를 얻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이 책은 현대미술계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미술 위조 사기범 존 드루(64)의 사기극을 담았다. 드루가 미술 대가의 위작을 그린 무명화가 존 마이어트와 함께 대담하게 사기를 칠 수 있었던 건 작품을 예술이 아닌 투자상품으로만 봤던 사람들의 허세와 욕망 때문이었다. 기록보관소의 자료를 활용해 가짜 판매영수증을 만들고 소장 내력을 위조하는 등의 수법으로 작품 관련 서류만 완벽하게 구비하면 됐다. 가정용 페인트로 그린 그림이라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책은 당시 영국 현대미술계의 실태뿐 아니라 사기꾼과 공범, 피해자의 심리까지 섬세히 밝혀나간다. 온통 거짓으로 점철된 인생을 산 드루는 범죄의 전말이 밝혀진 후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거듭하다 결국 자기 자신마저도 철저히 속이게 된 것이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책의향기#문학예술#미술품위조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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