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에 차와도 달리고 또 달리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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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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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

최소한의 무대로 강렬한 여운을 남긴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극단 성북동비둘기 제공
최소한의 무대로 강렬한 여운을 남긴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극단 성북동비둘기 제공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김현탁 재구성·연출)은 원작이 주는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공연의 형식을 얼마나 다르게 변주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의 원작을 해체해 재구성한 이 작품은 공연 시간을 원작의 절반도 안 되는 1시간으로 줄여 짧지만 강렬하다.

공연장은 건물 지하 공간을 거의 손보지 않고 그대로 활용한 듯했다. 연극평론가 김윤철 씨가 ‘반미학적 공간’이라고 표현한 무대만큼이나 극의 형식도 파격의 연속이다.

평생 세일즈맨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미국에 대공황이 닥치면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가정에서도 설 자리를 잃은 주인공 윌리 로만. 그는 마지막으로 사회적으로 무능한 장남에게 거액의 보험금을 남기기 위해 자동차 사고를 가장한 자살을 택한다.

작품은 주인공이 자동차를 몰아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원작의 마지막 장면을 첫 장면으로 사용하고 영화의 플래시백 기법처럼 이전 상황을 돌이켜 보여준다. 절묘한 무대 운용의 핵심은 ‘트레드밀’(러닝머신)의 사용이다.

정장 차림의 주인공 윌리(이진성)는 공연 내내 무대 중앙에 놓인 트레드밀에서 뛰는데 트레드밀은 그의 1928년식 시보레 자동차로 형상화되는 한편 그가 평생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땀을 줄줄 흘리고 호흡도 가빠져 대사를 하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모습은 직장과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주인공의 인생을 실감나게 전한다. 공연 내내 불편한 소음을 내던 트레드밀이 멈추면서 생긴 잠깐의 정적은 그의 허망한 죽음을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트레드밀을 힘겹게 뛰다 쓰러진 사내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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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연 무대로 동아연극상 새개념 연극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4월 8일까지 서울 성북동 성북동비둘기 연극실험실 일상지하. 1만∼1만5000원. 02-766-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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