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공부 담 쌓았던 고교 중퇴자, 개미에 미쳐 하버드대 박사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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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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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머핏 박사는

개미 촬영용으로 자신이 고안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마크 머핏 박사.
개미 촬영용으로 자신이 고안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마크 머핏 박사.
7일 오후 서울 창덕궁 후원(後園) 뜰에 뚱뚱한 중년 남성이 배를 깔고 엎드렸다. 둔중한 손에는 땅에 떨어져 있던 상수리 하나가 반으로 쪼개진 채 놓여 있었다. 남성은 손가락으로 상수리 안을 살짝 들춰 보더니 “음, 아무것도 없네” 하고는 이내 다른 걸 땅에서 집어 들었다. “어디를 가나 저래요.” 그의 아내 멜리사 씨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여기는 좋네요. 땀으로 범벅이 되지도 않고 달라붙는 벌레도 없고 말이죠.”

세계적인 개미 사진작가이자 탐험가인 마크 머핏 박사. 하버드대 박사이자 내셔널지오그래픽에 25년 동안 수많은 기사와 500장이 넘는 희귀 개미 및 동물 사진을 게재해 권위 있는 상을 몇 차례나 받았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개미를 찾아, 사람들이 듣도 보도 못한 생물 종을 찾아 세계 수십 개국을 탐험했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타기도 했다.

뜰에서 일어선 그의 불룩한 배에는 낙엽 몇 잎이 붙었지만 떨어낼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가 직접 고안한 개미와 곤충 촬영 전용 카메라를 손에 들고 혹시 어떤 새로운 생물을 발견할 수 있을까 고목의 등걸을 살펴보고, 담장 기와를 들춰 보곤 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밟고 대학 커리큘럼을 정상적으로 이수했다면 뭘 할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아서) 난 운이 좋았던 거죠.”

머핏 박사는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공부에 큰 흥미가 없었고 당연히 성적도 밑바닥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건물 안이 아니라 대자연에 있었다. 그가 개미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은 1973년, 중학생 때였다. 책 3권을 단돈 1달러에 살 수 있다는 말에 혹해 동네 서점 회원이 됐다. 그때 고른 책 중 하나가 개미 연구의 대가이자, 훗날 그의 스승이 되는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교수의 ‘곤충 사회(The Insect Societies)’였다. 그는 “표지를 펼친 순간 책이 나를 놔주지 않았다”고 했다.

고교를 중퇴한 그는 동네 도서관에 근무하던 한 생물학자의 조수로 일하면서 자연세계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몇 년 후 인근에 있던 빌로이트대에 진학했다. “들어야 할 생물 과목이 8개 있었는데 하나도 제대로 듣지 않았어요. 교수님들은 그저 사람 이름이나 여러 가지 외울 것만 잔뜩 이야기해줄 뿐이었거든요.” 고등학교에서도 듣는 둥 마는 둥 했으니 그는 사실상 생물과 관련한 정규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은 셈이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어려서부터 꿈꾸던 탐사여행을 하게 됐다. 그리고 코스타리카에서 운명의 순간과 만난다. 어느 날 아침 열대우림을 거닐던 그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희한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군대개미의 일종인 에시톤 부르첼리 수천 마리가 ‘전리품’인 전갈과 지네를 들고서 줄을 지어 이동하는 소리였다. 이튿날은 잎꾼개미 떼가 나무에서 잘라낸 잎들을 이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개미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지요.”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윌슨 교수를 찾아 하버드대로 향했다.

“사람들은 미국의 교육이 글러먹었다고들 이야기해요. 그런데 때때로 저같이 엉뚱한 사람을 슬쩍 끼워주기도 하지요. 하하.”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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