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알몸으로 나섰다 자유를 입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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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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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의 역사/필립 카곰 지음·정주연 옮김/344쪽·2만5000원·학고재

2007년 스위스 알레치빙하에서 그린피스 기후변화 운동의 일환으로 600명이 알몸으로 포즈를 취했다. 스펜서 튜닉 촬영. 학고재 제공
2007년 스위스 알레치빙하에서 그린피스 기후변화 운동의 일환으로 600명이 알몸으로 포즈를 취했다. 스펜서 튜닉 촬영. 학고재 제공
지난해 여름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누드 해변 렉 비치를 찾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홀라당 벗은 채 백사장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은 전혀 ‘야하지’ 않았다. 타인의 나체를 훔쳐보는 은밀한 시선 대신 천국에 온 듯 풍요로운 표정이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은밀한 부위를 피어싱으로 장식한 남성을 보며 인간의 미학적 상상력은 어디까지인가를 잠시 고민했다.

영국의 작가이자 심리학자인 저자는 2001년 여름에 연구를 하기 위해 영국의 자연주의 리조트 스필플라츠에 갔다가 우연히 옷을 전부 벗고 나서 자유를 느꼈다. 옷을 벗으니 온갖 걱정과 근심의 무게까지 덜어졌다는 것이다. 이후 누드모델이 되어보기도 하고 인도에서 순례 여행도 하면서 종교, 정치, 대중문화에 나타난 나체의 역사를 책으로 담았다.

19세기 미국의 자연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시인 월트 휘트먼도 나체를 예찬했다. 소로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면서 호수에서 나체 수영을 즐겼다. 시골에서 옷을 입지 않고 소박하게 살았던 휘트먼은 자전적 시 ‘나 자신의 노래’의 ‘일광욕-나체’ 도입부에 이렇게 썼다. “이렇게 자연과 가까이 있었던 적이 없다.… 상쾌하고 머리가 맑고 고요한 자연 속의 나체!”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다양한 이유로 개방된 장소에서 옷을 벗는다. 신을 찾기 위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주술적 목적으로, 투표자의 표를 얻기 위해, 아니면 불의에 저항하기 위해…. 혹은 ‘바바리맨’처럼 스스로를 나약하다고 느끼는 노출증 환자들은 타인을 깜짝 놀라게 함으로써 쾌감을 느끼기 위해 옷을 열어젖힌다.

저자에 따르면 위카, 자이나교, 드루이드교, 힌두교 등 일부 종교에 나체로 예배를 드리는 풍습이 있다. 미국에서 40만 명 이상의 신도를 거느린 신흥 마법 종교 위카에서는 알몸으로 입회식을 치른다. 신도들은 제의에서 벌거벗었다는 말을 ‘하늘을 입다’라고 표현한다. 인도를 기반으로 한 자이나교의 승려 중 200여 명은 초기 인더스 강 문명에 뿌리를 둔 나체 수행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자 모든 집착을 버리는 상징적 의미에서 벌거벗는다.

현대에 공공장소에서 나체를 드러내는 행위는 일거에 대중의 주목을 끌 수 있어 시위의 한 방법으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 인도에서는 여성 40명이 군인들의 성폭행과 살인에 항의하며 나체로 병영을 행진했다.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성 50명은 임박한 이라크전에 반대하며 잔디밭에서 나체로 누워 평화를 뜻하는 글자 ‘PEACE’를 만들었다.

저자가 정리한 나체의 역사에 음란을 목적으로 한 사례는 없다. 그렇기에 책에 실린 사진 143컷은 적나라하되 야하지 않다. 알몸이라는 인간의 자연성과 옷을 입는다는 사회적 규범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할 뿐이다. 책은 경찰에 연행되지 않고 나체의 자유를 체험해볼 기회도 소개한다. 세계 곳곳에는 알몸으로 번지점프를 하거나 스키를 타고 결혼식을 올리며 다 함께 벗은 채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는 상품도 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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