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꽃과의 대화]입춘 무렵의 난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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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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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으로 간 동남아 자생란, 화려한 양란으로 대변신

서로 친척 지간인 양란 심비디움(위)과 보춘화.
서로 친척 지간인 양란 심비디움(위)과 보춘화.
오늘은 24절기 중 입춘(立春)이다. 이 추위에 무슨 한가로운 봄 얘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절기상 그렇다는 말이다. 중부지방엔 아직도 영하 10도의 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한낮의 햇살이 새삼 따뜻하게 느껴지고, 동백의 꽃망울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예전엔 전북 익산만 하더라도 설날 즈음에 김장 김치가 너무 익어버려 새로 김치를 담그기도 했다고 한다.

○ 동서양 미감 차이가 난 개량에 영향

입춘 즈음엔 난꽃이 피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중국 원산의 보세란(報歲蘭· Cymbidium sinense)이 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과 중국, 일본 원산인 보춘화(報春花· Cymbidium goeringii, 춘란이라고도 함)는 이름 그대로 ‘봄을 알리는 꽃’ 또는 ‘봄꽃’이다. 보춘화는 지난해 여름부터 만들어 놓은 꽃눈을 지금부터 서서히 올려 3월경에 꽃을 피운다.

한편 화원에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큼지막한 난꽃은 보춘화의 친척인 ‘양란’ 심비디움이다. 양란 심비디움은 동남아시아나 중국 남부에서 자생하는 아열대성 난을 유럽인들이 도입해 육성한 것을 말한다. 심비디움 꽃은 중국 춘제(春節·설날) 기간에 선물용으로 많이 이용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2000만 달러어치의 화분을 수출하고 있어 화훼류 수출의 주역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부터 제철 꽃이 적은 겨울철에 분화나 절화로 각광을 받고 있다.

동양란과 서양란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원산지에 있다. 그렇지만 외관상의 차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동서양 사람들의 미감 차이에 따른 개량의 정도라 할 수 있다. 동양 3국에서 오래전부터 길러온 보춘화는 물이 흐르듯 이어지는, 추상적인 선형 잎의 단아한 아름다움이 관상 포인트다. 그러므로 굳이 애써서 화려한 꽃이 피게 하거나, 꽃을 많이 피우게 하는 방향으로 개량되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친척인 양란 심비디움은 유럽이나 미국인들의 미감이 반영돼 다양한 색과 모양을 가진 화려한 꽃을 피우도록 교잡 개량됐다.

모습은 다르지만 보춘화와 양란 심비디움은 식물분류학상 엄연히 가까운 친척(심비디움 속·屬)이다. 둘 다 난과 식물의 독특한 특징을 공유한다. 난 꽃은 많은 외떡잎식물이 그러하듯이 꽃받침 3장과 꽃잎 3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맨 아래에 있는 상대적으로 큰 꽃잎을 입술꽃잎이라 한다. 입술꽃잎은 매우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다른 식물의 꽃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이 입술꽃잎은 일반적으로 매개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또 난의 분갈이 해본 사람은 난 뿌리의 독특함을 알 것이다. 난의 뿌리는 굵기가 우동발만 하고 잔뿌리가 별로 없다. 이것은 진짜 뿌리 바깥에 물을 저장하는 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뿌리는 쉽게 썩을 수 있으므로, 가볍지만 알갱이가 굵은 돌(난석)이나 나무 등걸의 껍질(바크), 이끼류(수태)에 심어 기른다. 난석과 바크, 수태는 물기를 잘 간직하면서도, 알갱이 사이에 넓은 공간이 있어 난 뿌리들이 숨쉬기가 좋다. 즉, 물가짐과 물빠짐을 동시에 충족해 준다.

○ 매개곤충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수명 긴 난꽃

보통 난꽃은 수명이 매우 길다. 자연 상태에서는 매개 곤충이 꽃가루받이를 해 줄 확률이 매우 낮아 오랫동안 개화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은 개화 후에도 씨방을 완전히 만들지 않다가 꽃가루받이가 되면 그때부터 씨방을 만들어서 일주일가량이나 걸려 도착하는 꽃가루와의 수정을 준비하는, 아주 기묘한 생리생태적 진화의 길을 택했다. 우리는 그 덕분에 난꽃을 오랫동안 볼 수 있게 됐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팔레놉시스라는 난꽃은 꽃가루받이를 하지 않았을 때에는 꽃 한 송이의 수명이 28일이나 되지만, 꽃가루받이를 하면 이틀 만에 시들어버린다. 마찬가지로 3개월이나 가는 심비디움 분화도 꽃이 꽃가루받이를 하거나 꽃의 전면에 불쑥 솟아나 있는 꽃가루덩이(花粉塊)가 떨어지면 빨리 시들어 버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두꺼운 외투를 한 번은 더 드라이클리닝해 남은 겨울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아직 봄은 멀다. 하지만 단아함과 화려함이란 동서양 간 미감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이들 심비디움 속 난꽃들과 함께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봄을 기다리는 재미를 가져보면 어떨까. 추운 입춘의 생뚱맞음이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을까.

서정남 농학박사(농림수산식품부 국립종자원) suhjn@seed.go.kr  
김미선 농학박사(농촌진흥청 원예특작과학원) kimms290@korea.kr  
#난꽃#자생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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