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땀으로 선물한 새 학교… 놀이터 그네는 동네 명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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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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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학교 지어주기 봉사단 라오스 방비엔 현장 취재

어른 허벅지보다 조금 굵은 나무 기둥 2개가 전부였던, 초라한 교문도 이제 안녕이다. 17일 오후 ‘현대자동차그룹 해피무브글로벌청년봉사단’ 학생들이 새 학교 교문 옆으로 늘어선 담벼락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 모습. 담벼락은 지난주에 학생들이 직접 쌓았다. 방비엔=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어른 허벅지보다 조금 굵은 나무 기둥 2개가 전부였던, 초라한 교문도 이제 안녕이다. 17일 오후 ‘현대자동차그룹 해피무브글로벌청년봉사단’ 학생들이 새 학교 교문 옆으로 늘어선 담벼락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 모습. 담벼락은 지난주에 학생들이 직접 쌓았다. 방비엔=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영화 ‘트루먼 쇼’ 보셨죠? 여기도 영화 속처럼 100만 평(약 331만 m²) 되는 세트장이에요. 비행기 타고 온 것도 시뮬레이션으로 설정해 놓은 거고.”

‘세트장 조작설’이 불거졌다. 이곳이 정말 라오스가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것. 큰 세트장에 온풍기를 수백 대 갖다 놓고, 온도는 27도로 설정해 놓았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작업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머리 위의 태양도 사실은 천 대가 넘는 조명이고, 완공되면 세트장이 열리면서 눈이 내리는 강원도 산골 마을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함께 일하고 있는 현지 인부들과 마을 주민들도 특별히 섭외해 온 동남아시아 사람들이라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학교 공사 현장과 숙소만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의심을 할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다시 작업이 시작됐다. 여기는 라오스의 수도 비앤티안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인 방비엔 군(郡)이다.

○ 처음 타 보는 그네와 미끄럼틀

까까머리에 목이 늘어난 녹색 셔츠를 입은 타(7)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간다. 오전 10시, 아직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할 시간이다. 라오스의 초등학교는 오전 8시부터 11시 반까지 수업을 한다. 2시간의 점심시간 후, 오후 1시 반부터 4시까지 다시 수업이 이어진다. 타는 오늘 아침엔 집에서 빨리 떠나고 싶어 안달했다. 천천히 걸어와도 15분이면 닿는 거리를, 오늘은 빨리 오려고 경운기까지 타고 왔다.

타가 숨차게 달려간 곳은 새 학교 운동장 한편에 마련된, 그네 4개와 미끄럼틀 하나가 전부인 작은 놀이터. 지난주 새 학교 운동장 축구골대 옆에 놀이터가 생긴 이후로 매일 이곳을 찾았다.

“그네를 처음 타 봤어요. 재미있어요.”

1 해외봉사단 작업 4일째, 대학생들이 교실 안으로 물을 나르는 모습. 2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있는 라오스 어린이들. 더 높이, 조금 더 하늘과 가까워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은 다 똑같았다. 3 아이들에겐 조그만 손에 쥔 스펀지에 스며드는 빨간색, 녹색 물감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현대자동차그룹 해피무브글로벌청년봉사단 제공
1 해외봉사단 작업 4일째, 대학생들이 교실 안으로 물을 나르는 모습. 2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있는 라오스 어린이들. 더 높이, 조금 더 하늘과 가까워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은 다 똑같았다. 3 아이들에겐 조그만 손에 쥔 스펀지에 스며드는 빨간색, 녹색 물감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현대자동차그룹 해피무브글로벌청년봉사단 제공
맨발로 한창 그네를 타고 있던 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타 주위로 어느새 20여 명의 아이가 몰려와 그네와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학교 안 가도 되냐”고 묻자, 휴교일이란다.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에 걸쳐 매달 정기적으로 보는 시험을 치렀기 때문에 쉬는 날이었다.

수업 빠지면 안 된다며 근엄하게 늘어놓으려던 잔소리가 다시 목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어 쫓아 보냈다고 한다.

“라오스 공립학교에는 이런 놀이시설이 없어요. 지금까지 여러 후원 단체를 봤는데, 보통 학교만 지어주지 놀이터 같은 부대시설은 지원을 잘 안 해줬어요. 아마 여기 방비엔 군에 이만한 놀이시설이 갖춰진 곳은 없을 거예요.”

통역을 해주던 기아대책 최수호 기아봉사단원(46)이 덧붙였다.

놀이터는 폰사이 마을 초등학교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타 옆에서 그네를 타던 시셍펫(9)은 3km 떨어진 마을에서 왔다. 폰사이 마을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서 온 형, 누나들이 놀이터를 지어줬다며 자랑했다고 했다.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그새 소문이 났나 보다.

손녀 세 명을 데리고 온 46세의 젊은 할머니도 있었다. 손녀들이 같이 가자고 졸라 어쩔 수 없이 나선 길이란다.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그녀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도 그네와 미끄럼틀을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었다. “신기하네요. 아기들이 좋아하게 생겼어요.” 직접 타 보고 싶지 않은지 묻자, 수줍은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들이 이렇게 많은데요.”

○ 간절한 비어 라오 한 잔

“어디 갔다 왔어요? 형님을 위해 남겨둔 담벼락이었는데…. 직접 시멘트 한번 개어 보시면, 저희가 지난주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실 거예요.”

전경진 씨(25·세종대 항공우주공학과)가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다가와 목장갑을 건네줬다. 기자는 새 학교로 이사 올 라오스 초등학생들이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일하기 싫어 농땡이를 친 것처럼 보였나 보다. 손바닥에 빨간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두툼한 목장갑을 끼고 삽을 잡았다. 삽으로 시멘트와 흙, 물을 섞기 시작했다. 일주일 ‘짬밥’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대학생들의 능숙한 삽질에서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모두 현대모비스 최호용 과장(42)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B팀 멘토로 참가한 최 과장이 학창 시절 공사장 아르바이트에서 얻은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수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 정문 담벼락을 하얀 페인트로 칠하고 있었다.

슬슬 ‘신호’가 왔다. 허리를 펴고, 장갑을 벗었다. 전 씨가 또 한마디 했다. “얼마나 했다고 장갑을 벗어요?” 고개가 저절로 바닥을 향했다.

“‘비어 라오(Beer Lao)’ 한 잔 했으면 딱 좋겠는데….”

함께 삽질을 하면서도 힘든 기색 없이 천진난만하게 계속 말을 쏟아내던 그가 맥주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눈이 반짝거린다. 라오스에 왔으니 당연히 비어 라오 한 잔은 마시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곳에 온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구경도 못 해봤다고 했다. 세계 3대 맥주 중 하나인데, 비어 라오 한 잔 못 먹고 가겠다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봉사단에서 절대 안 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가 술이고, 다른 하나는 연애다. 규칙을 어기면 바로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다.

갠 시멘트를 담벼락으로 나르던 이송현 씨(20·여·KAIST 생명화학공학과)가 “콜라 먹고 싶다”며 거들었다. 평소 콜라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먹고 싶은지 모르겠단다. 녹차빙수, 삼겹살, 김치말이국수, 파전 등 너도나도 먹고 싶은 것들은 쏟아냈다. 삽질하기도 버거운데 다들 어디서 저렇게 말할 기운이 나는지 놀라웠다.

“그래도 연애는 다 몰래몰래 하더라고요. 어제는 밤에 다른 팀의 남자애와 여자애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걸 봤어요. 남자는 애인이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들이 해외봉사단 간다고 하면 다들 싫어해요.” 먹을 것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살짝 귀띔해 줬다.

“3시 45분까지 쉬었다 하자.” ‘작업반장’인 이명호 씨(23·한국해양대 기계시스템공학과)의 말에 학생들이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해병대를 갔다 왔다며 안정적이고 빠른 삽질로 시범을 보여준 친구였다. 조수현 씨(21·여·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가 언제 챙겨 왔는지, 잔뜩 안고 온 물병을 학생들에게 건넸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학생들 사이로 맨발의 라오스 아이 3명이 다가왔다. 여기저기서 “사바이디(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자오스 양(이름이 무엇입니까)?”이라고 묻자 아이들이 웃으며 도망갔다. “‘예쁘다’가 뭐지?” 전 씨가 목에 걸어 놓은 이름표 뒷면을 살펴보았다. 한국에서 출력해 온 ‘기초 라오스 생활 회화’가 땀에 흠뻑 젖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갑상샘 때문에 군대도 면제받았거든요. 그렇지만 이렇게 힘든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싶었어요. 자신감뿐만 아니라 미끄럼틀 하나에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작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알게 됐어요.”

학생들이 타고 온 버스가 만들어 준 그늘에서 김용백 씨(23·성균관대 화학공학과)가 진지하게 말했다.

19일 오전 11시 마을 주민들이 학교 교문 앞부터 새 학교 건물까지 길게 늘어섰다. 해외봉사단이 한 명씩 들어설 때마다 목에 ‘폼 아라이’라는,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 줬다. 노끈 양 끝에 주황색 꽃 다섯 송이가 가지런히 이어져 있는, 라오스에서 귀한 손님이 왔을 때 환영의 의미로 건네는 꽃다발의 일종이었다. 꽃 이름은 ‘다우 흐앙’. ‘다우’는 별이고, ‘흐앙’은 빛나다라는 뜻이다.

대학생들이 2주 동안 흘린 땀방울이 별이 되어 가슴팍에서 빛났다.
P.S. 1994년 지어진 폰사이 초등학교는 작은 시골길이 끝나는 마을에 자리 잡은, 대나무로 엮은 벽체로 지어진 작은 학교입니다. 새로운 학교 건물을 짓는 것은 마을의 숙원 사업이었습니다. 이곳을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기아대책과 함께 ‘현대자동차그룹 해피무브글로벌청년봉사단’이 7일부터 21일까지 다녀왔습니다. 88명의 대학생은 직접 시멘트를 개어 학교 교실 바닥을 다지고 담장을 쌓았습니다. 새하얀 페인트로 교실 벽과 담장을 칠하는 일도 했습니다. 운동장 구석에 3칸짜리 화장실도 만들고, 화장실 앞에 아이들이 간단히 씻을 수 있는 공동 세면대도 만들었습니다. 현지 아이들을 대상으로는 다양한 교육 봉사를 했고,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도 진행했습니다. 학교 건물은 지난해 11월 말에 착공했지만, 처음 대학생들이 학교를 찾았을 때는 교실 벽도 없고 지붕도 채 다 얹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2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학교는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무알라파 폰사이 초등학교 교장(44)은 “여름에 비가 오면 지붕에서 비가 새고, 벽은 교실 사이의 공간을 온전히 가려주지 못해 다른 반에서 수업하는 소리가 다 들렸다.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기뻐했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앞 반 아이의 발을 보며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방비엔=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기아대책 후원 정보
ARS 후원 060-700-0770(통화당 2000원) 전화 후원 신청 02-2085-8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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